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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딸의 할머니가 저녁거리가 걱정되신다며 불탄의 아파트에 들렀습니다. 그래요, 세 딸의 할머니인 불탄의 어머니께서는 세 명의 손녀들이 어떤 저녁을 맞게 될 것인지 그것이 궁금했을 겁니다. 예전처럼 도시에서 시골로, 그것도 몇 시간을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부족해 무슨무슨 마을을 종착지로 맞는 시골버스의 어르신이었다면 더더욱 그랬을 법합니다.

하지만 불탄과 아이들의 할머니, 즉 불탄의 어머니와의 거주 거리는 걸어서 10분 정도입니다. 오늘은 아이들이 좋아라 하는 돼지 목살을 요량으로 집으로 가는 길에 마트에 들렀습니다. 하지만 결국 선택한 것은 원산지 독일산의 대패삼겹살이었습니다. 아직까지 국산 돼지고기는 '생'고기가 주류이다 보니, '냉동'이어야만 가능한 대패삼겹살은 수입산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죠? 고기를 한창 굽고 있는데, 고기라면 한가락 하는 불탄의 큰 딸과 둘째 딸은 "아빠, 오늘 고기 차돌박이 맞죠?"라고 하더랍니다. 흠……, 어떤 면에서 차돌박이와 대패삼겹살은 비슷해 보이기는 하죠. 굽기 전의 모양새만으로는 완전 딴판이지만, 불판에서 굽혀지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면…….

참 산뜻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할머니, 즉 불탄의 어머니께서 댁에 가신다며 들고 나온 것은 20리터 짜리 쓰레기봉투와 아무렇게나 담아 나온 음식물 쓰레기 봉투였습니다. 부끄럽고, 황송하고, 뭔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습니다. 애써 어머니께서 들고 계신 봉투를 빼앗아 들은 불탄의 고개는 땅바닥을 향해 넉넉히, 너무나도 처참하게 꺾여진 상태였습니다.

"아범아, 됐다. 느그들 편히 살면……. 그런 게 다 좋고, 편한 거란다"





'쿠~웅!'

정말로 뒷목과 뒷통수를 한꺼번에 쳐올리는 범종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가졌던 생각이라는 것이 바로 천사의 사랑이 아니었나 싶더랍니다. '아!, 어머니. 이런 것이 바로 어머니의 사랑 방식입니까? 이 사랑 저 역시 가져가야 할 멍에인 거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불탄은 어머니와 함께 아파트 재활용 분리수거장으로 향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콜라 패트를 들고 "아범아, 이건 프라스틱에 넣는 거니?"라며 다섯 칸짜리 분리수거대에서 머뭇거리셨고, 마땅히 대답을 못한 불탄으로서는 어머니의 빨강 봉다리를 빼앗다시피 한 상태에서 건네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고마움이라는 것, '울컥'하며 치솟았던 것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터이지만.

그렇게 어머니께서 "나, 간다. 술 조금씩만 먹고……"라고 하시며 저만치 걸어가실 때 분탄은 정말이지 '행복'하다는 감정에 충만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 모두 생존하신 것만으로도, 아니 그보다는 먼저 두 분 다 모두 너무나도 건강하시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생각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아니, 지금 이 시간이 너무나도 고마왔습니다. 어머니께서 남기신 뒷 그림자가 크고도 컸기 때문이었겠지요.

살짝 고개를 돌리니 조그마한 간이평상이 보였습니다. 아! 아파트 동과 동을 가르는 중간에 놓여 있었던 평상이었습니다. 생각 없이 살다 보니 그동안 그렇게나 많이 눈에 띄었음에도 여지껏 아무런 감흥을 갖지 못했었나 봅니다. 이제 보니, 아파트 입주자 중 누군가가 버렸을 법한 벽시계가 7시 17분을, 어렸을 적 어느 한 때를 추억할 수 있는 오줌싸개 키 모양의 온도계가 영상 12도를, 묵묵히 가리키고 있더랍니다.

흐뭇한 웃음이었을 테지요. 저녁 준비를 위해 총총히 달리신 어머니의 뒷 모습, 애써 시선을 돌린 그곳에 묵묵히 자리했던 벽시계와 온도계, 자신의 존재 의미를 마지막 연기로나마 어필했을 법한 담배 한 개피, 그리고 그들 모두를 눈으로 담고 피부로 느끼며 가슴으로 담았을 것이기에…….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