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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회가 논의하고 있는 의석수와 비례대표 비율, 선거구 획정 기준은 유권자의 정치적 기본권과 직결되는 사안입니다. 정당의 이해득실로 따질 것이 아니라 유권자의 표의 가치가 최대한 동등해질 수 있도록, 유권자의 다양한 의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시민단체들은 작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선거구 획정에 큰 변화가 예고된 올해, 현행 선거제도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국회가 범국민적인 논의 과정을 만들어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해왔습니다. 그러나 국회는 이 일에 큰 힘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절반 가까이 버려지는 유권자의 표에 무관심할 뿐더러, 여당인 새누리당은 지역구 의석이 늘어나는 만큼 비례대표 의석을 줄일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 시민단체들은 비례대표 의석을 편의적으로 줄이려는 시도를 없애고, 국회 기능과 역할을 고려한 국회의원 산정 기준을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국회 의석수 기준을 법제화"하고, "비례대표 의석 규모를 지역구 의석의 절반 이상"으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청원하였습니다.

국회의원 숫자를 정하는 보편적인 규칙은 없지만, 한 나라의 국회의원 정수는 입법부의 규모와 힘을 나타내주는 지표로서 적정한 수를 보장해 대표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현재 19대 국회의원은 1명당 16만8천 명이 넘는 인구를 대표하고 있는데, 이는 제헌국회 당시 의원 1명당 10만 명, 13대 국회 당시 의원 1명당 14만5천여 명에 비하면 인구 대표성이 낮아진 것입니다. 국회의원 1인당 대표하는 인구수가 어느 수준이면 적정한지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구수 기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검토해 볼 수 있겠지만, 시민단체들은 민주화 이후 치른 1988년 13대 총선에서 적용된, 의원 1인당 인구수 14만5천 명 수준으로 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를 현재 5천1백만 명이 넘는 인구수에 적용하면 360여 명이 산출됩니다.




의원정수 확대는 대표성을 강화하고 비례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국회의 기능을 회복하는 차원에서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정부 예산은 1988년 약 18조에서 2015년 약 376조로 22배가 증가했고, 국회에 접수된 법률안도 13대 국회와 비교하여 18대 국회는 15배 더 늘었습니다. 국회가 감시 견제해야 할 행정부와 사법부는 점점 비대해지고 있고,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복잡다단해지고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이처럼 국회가 꼼꼼히 따져보고 다뤄야 하는 일은 크게 늘어났는데도 국회 의석수는 1988년 13대 국회의원 299명, 19대 국회의원 300명입니다.

비례대표 의석 규모에 대해서도 표의 등가성과 비례성, 국회의 다양성을 위해서는 비례대표 의석 규모가 지역구 의석과 일치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당장 도입하기 어렵다면 단계적으로 지역구 수의 절반 이상은 되어야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렇게 될 경우, 현재 지역구 의석수가 246석이니, 비례대표 의석수가 최소 100석 이상은 되어야 합니다.

또한, 비례대표제는 1등만 당선되는 지역구 선거에서 생기는 사표를 보완해주는 장치이자, 여성과 청년, 장애인, 소상공인, 이주민 등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국회는 우리 사회 구성의 축소판이어야 하는 만큼 다양한 세대와 직업, 계층을 다양하게 대변해야 합니다.

한편, 많은 시민들의 의견처럼 국회가 갖는 불필요한 특권은 과감하게 폐지하고 예산낭비 방지 대책도 반드시 마련되어야 합니다. 의원 수를 확대하는 것과 병행하여 정당 국고보조금 등을 축소하고, 부적절하게 유용되어 문제가 된 특수활동비 등 국회 예산 지출내역도 보다 투명해져야 합니다. 2015정치개혁시민연대도 이를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다만, 국회의 특권 축소는 그 자체로 추진되어야 하고, 적정한 의원수를 보장하는 것과 비례대표 확대는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목표로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국회에 대한 높은 불신과 국회 무용론까지 번지는 반(反)정치 여론을 생각하면, 의원 정수에 대한 언급은 한국 사회에서 금기의 영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는 왜 300명의 대표를 가져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고 논의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한국사회의 갈등을 조율하고, 다양한 입법적 요구를 반영하고, 비대해진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우리 국회는 더욱 유능해져야 합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