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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로데이’ - 정신줄 놓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입소문화 되어가더니 하나의 문화코드로 완전히 정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어떤 이유에서든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OOO Day’일 것입니다. 수없이 많이 탄생하고 명멸해가고 있는 그 데이마케팅의 홍수 속에서 ‘빼빼로데이’의 막강한 파워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틀 전부터였습니다. 그리고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그 ‘빼빼로데이’의 상술 한가운데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유치원생 두 딸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참으로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는 ‘빼빼로데이’의 위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장난스럽게 시작했던 깜찍한 생각의 ‘빼빼로데이’가 숱한 기업들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기념일보다 더 성공하게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OOO Day’ 중에서 가장 성공한 케이스 중의 하나일 거라는 확신을 갖게 만드는 ‘빼빼로데이’가 지금과 같은 막강파워를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또 해당 제품을을 생산하는 제과업체가 광고까지 내보내면서 적극적으로 학생들의 소비를 부추기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우리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 날부터인가 갑자기 학생들 사이에서는 ‘빼빼로데이’가 만들어졌고, 입소문으로 퍼져갔으며, 어느 시점 이후부터는 문제의 빼빼로를 제조·판매하는 제과업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었겠지요. 그 개입이라는 것에 있어서도 해마다 강도를 높여가면서 대대적인 홍보와 광고를 더해 갔을 것이고, 지금은 해당 제과업체의 11월 전체 매출에서 빼빼로가 차지하는 비율은 아마도 상당할 것입니다. 이른바 ‘데이마케팅’의 수단으로 완벽하게 성공한 케이스로 칭송을 받게 된 것이지요. 이제는 발렌타인데이의 초콜릿이나 화이트데이의 사탕과 함께 학생들이나 젊은 연인들에게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기념일이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다시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이틀 전부터 유치원에 다니는 우리 두 딸들은 ‘빼빼로데이’의 정확한 의미도 모른 채 무조건 기다리며 기대치를 높여갔습니다. 유치원에서 같이 공부도 하고 놀이도 하는 친구들에게 빼빼로를 선물해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선물을 하겠다는 두 아이를 불러 앉혀놓고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먼저 큰애한테 먼저 물어보았지요.

- 불탄 : 빼빼로데이가 뭐하는 날인지 아니?
- 큰애 : 네. 친구한테 빼빼로 주는 날이잖아요.
- 불탄 : 그래? 그럼 왜 빼빼로를 줘야 되는데?
- 큰애 : 빼빼로데이니까 빼빼로를 주는 거잖아요.

‘그래 맞다. 빼빼로데이니까 빼빼로를 줘야지. 빼빼로데이에 초코빵을 주면 그게 초코빵데이지 빼빼로데이겠느냐?’ 이미 하나의 선물문화로 자리한 것을 짧은 몇 마디의 말로써 아이들을 이해시킨다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면서 다음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 그래. 그럼 몇 명한테 선물하고 싶은데?
- 28명인데요, 두 개 달라는 친구랑 선생님이랑 합치면 36개 사가야 되요.
- 두 개 달라는 친구한테는 꼭 두 개씩을 줘야 되는 거야?
- 제가 준다고 했어요.

작은애한테 또 물어봅니다.

- 너희 줄기반은 몇 명이야?
- 25명이고요. 선생님 거랑 해서 26개 사야 되요.“
- 니 친구들은 두 개 달라는 애들이 없나 보네.
- 네. 하나씩만 주면 되요. 그치만 주고 싶지 않은 친구도 있어요.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선생님한테 여쭤보고 와서 다시 말해줄래?”라는 말을 아이들한테 들려주며 선생님의 의견은 어떠한지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어제 저녁에 다시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큰애의 선생님은 아이가 빼빼로를 사가도 괜찮다고 했답니다. 작은애는 미처 선생님한테 여쭤보지 못했고요. 그리고 드디어 오늘 ‘빼빼로데이’의 아침은 밝아왔습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집 근처 조그만 마트 두 군데를 들러 보았지만 조그만 종이상자에 들어있는 종류밖에 없었고, 또 한군데는 그나마 낱개로 포장된 것을 찾아낼 수 있었지만 10여개가 고작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

저 앞에 편의점이 보이더군요. 아이들 손을 잡고 편의점으로 들어가니 역시나 편의점에는 낱개로 포장된 커다란 빼빼로가 있었습니다. 투명한 둥그런 통모양의 포장 속에는 15개가 들어있었는데 한통에 5,000원씩 하더랍니다. 두 통을 사면서 큰애한테 당부를 했습니다. 누구는 두 개 주고, 누구는 한 개 주면 한 개 받은 친구가 슬플지도 모르니까 공평하게 모두 한 개씩만 주라고 말입니다. 큰애의 얼굴에는 금새 환한 웃음이 귀까지 걸려 올라갔습니다. 몇 군데의 가게를 지나치면서 못 사가게 될까봐 어린 맘에는 걱정이 되었었나 봅니다.

그런데 큰일이 났습니다. 작은애가 소리를 죽이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겁니다. 선생님 허락을 받지 않았으니 선물을 사갈 수 없었던 것인데 아이는 그게 못내 서운했나 봅니다. 다시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리려는데 이제는 많이 친해진 학교 앞 문구점 아주머니께서 아이들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네 오십니다.

작은애의 이야기를 듣던 아주머니는 문구점에도 학급에서 부탁해 빼빼로를 많이 갖다놓았다고 하시며 종류가 많으니까 들어와서 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 문구점으로 들어가 진열되어 있는 것들을 봤더니 솔직히 편의점 빼빼로보다 훨씬 더 좋아보이더랍니다. 작은애가 얘기했던 개수대로 26개를 샀더니 아이들이 평소에 인사를 꼭 하고 다녀서 예뻤다는 립서비스와 함께 끄트머리 잔돈을 싹뚝 잘라내고 4,000원만 받으시더군요. ‘이런. 직작 알았더라면 편의점에서 사지 않고 여기서 사는 건데.’하는 아쉬움이 밀려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유치원까지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또 교실 문 앞에서 아이들 손에 각각의 빼빼로가 들어있는 선물봉투를 들려주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선생님께 선물에 대한 허락을 받아오라고 한 것은 내심 선생님이 거절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타이르지 않고 빼빼로를 사서 손에 들려준 것은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했던 약속을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작은애한테까지 친구들에게 선물할 빼빼로를 사준 것은 큰애와 차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기죽지 않고 생활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친구들에게 선물을 하면서 생기게 될 행복을 앗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상술에 어이없이 동조하고 있는 스스로가 무척이나 한심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오늘입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