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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를 지향하는 현장언론 '민플러스'가 새해들어 꺼내든 화두, '직접민주주의'. 참으로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많은 공감은커녕 이대로 묻혀버리면 어떡하나' 싶은 조바심이 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쨌든 기왕지사 꺼내든 카드이니 민플러스가 전하려 하는 내용 만큼은 본 블로그를 통해 고스란히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덧붙이고 싶은 말씀은 민플러스가 이 한 쪽의 글판으로 끝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직접민주주의 시리즈 연재 프롤로그 : 현대적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과 과제'라는 제목에서 드러낸 바와 같이 동일한 주제로 연타의 준비를 하는 모양이니 지금으로선 기대해 볼 일이라는 것입니다.


본 포스트에 옮긴 글의 원문은 링크(http://www.minplus.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90)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미지 출처 - 민플러스


직접민주주의의 오해와 진실


직접민주주의라고 하면 흔히 고대 그리스에서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토론하고 결정하는 광경을 떠올릴 것이다. 좀 더 배경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타운홀미팅이나 라운드테이블 정도를 더 얘기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얘기하면 “고대도 아니고 그게 실현가능할까요?” “대의제 기구가 잘하고 있는데 그런 것을 왜 해야 하죠?”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거론되는 직접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처럼 완전한 의미의 직접민주주의는 아니다. 일상적인 정책결정은 행정부나 의회 같은 대의기관에 위임하되 중요한 의사결정은 시민이 직접 결정하는, 말하자면 ‘절충형 직접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직접민주주의는 어느 시점에 작동해야 하는가? 첫째로 대의기관이 심각하게 민의가 어긋나는 방향으로 정책결정을 할 때 그것을 제어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혹은 계층 간에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엇갈리거나 국가의 중대사가 걸린 문제라면 대의기관이 직접 시민에게 결정을 물을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의 유형은?


좁은 의미의 직접민주주의는 ‘표결민주주의’이다. 흔히 국민소환, 국민발의, 국민거부를 3대 국민투표라고 부른다. 국민소환은 민의와 어긋나는 정책을 수행하거나 심각한 비위사실이 적발된 공직자를 국민이 직접 퇴출시키는 것이다. 주로 선출직 공직자에 대해 임기가 다하기 전에 속히 그 자리에서 끌어내릴 필요가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다. 국민발의는 어떤 법안을 일정 숫자 이상의 시민이 제기할 경우 의무적으로 입법부에서 논의와 표결을 해야 하는 제도를 말한다. 국민거부는 입법부에서 통과된 법률을 국민투표를 통해 폐기시킬 수 있는 제도이다.


한번 선출직 공직자를 뽑고 나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임기가 다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거나 우리 목소리를 들어줄 때 까지 시위·집회·단식투쟁 등 온갖 방식을 동원해야만 할까? 시민이 직접 끌어내릴 수 있다면 위정자는 좀 더 시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국민발의와 국민거부도 대의기구의 입법권 독점을 막아 시민들이 마냥 국회의원들에게 로비나 압력행사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전통적인 정의를 벗어나면 숙의민주주의, 추첨민주주의도 직접민주주의의 한 영역으로 포함할 수 있다. 숙의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는 대의기관이라고 무작정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결정 과정에 최대한 많은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급한 결정을 요하는 의제에 대해 마냥 평행선만 달리는 토론만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최근 온라인 플랫폼 등을 활용해 수천, 수만 명의 시민이 동등하게 토론하고 정해진 시간 내에 결론까지 도출하는 실험들이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국내에도 많이 소개된 바 있다.


추첨민주주의도 직접민주주의와 완전히 조응하는 개념은 아니지만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 상당히 민주화된 사회에서도 막강한 자금력과 사회적 인지도, 학연, 지연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대의기관의 대표로 선출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추첨으로 대표를 뽑는다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고 사회적 약자의 정치진출 장벽을 낮추며, 허위공약이나 이미지 선거로 잘못된 대표가 선출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물론 모든 공직을 추첨으로 선발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타당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실현이 어렵다. 그래서 기존의 투표로 선출되는 대의제 기구들을 존치시키면서 이들을 상시적으로 감시할 ‘민회’ 개념의 또 다른 대표기관을 두고 그 구성원을 추첨으로 선발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물론 자신이 추첨될 경우 기꺼이 공직에 복무할 의사를 밝힌 인원들만 한정해서 추첨을 실시할 수도 있다.


현대 직접민주주의의 한계와 가능성은?


한 나라의 인구가 수천만에서 수억에 달하는 현 시대에 아무리 절충적이라 해도 직접민주주의를 제대로 운용하기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실제 우리나라도 부분적으로 주민소환이나 주민투표제도가 도입됐지만 극히 낮은 투표율과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제대로 기능한 적은 거의 없다. 따라서 국민들이 직접민주주의 제도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만들 것인지가 가장 큰 과제이다.


시민교육과 캠페인 강화로 참여의식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시민들이 최대한 적은 비용에, 최대한 손쉬운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출할 수 있도록 세부정책을 잘 설계하는 문제도 필요하다. IT와 빅데이터 기술의 발전은 직접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데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온라인 기술을 활용해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넘어 최대한의 다중이 토론을 진행하고 이러한 토론의 결과가 과거와는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체계화 돼서 빠른 의사결정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우리나라의 대선 전자개표 조작 의혹처럼 직접민주주의를 가장한 또 다른 민의왜곡과 빅브라더의 출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이처럼 현대적 직접민주주의는 많은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전 세계가 경쟁하듯 더 낳은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직접민주주의는 제도와 의식 두 가지 측면에서 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복지확대 등 진보적 의제를 발굴하고 이슈화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왔던 우리나라의 진보정치세력에게 직접민주주의 확대는 또 다른 기회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와 직접정치, 같은 말 아니었나요?


직접민주주의와 직접정치는 자주 혼동해서 쓰이지만 이 또한 결이 다른 개념이다. 직접정치는 대의민주주의라 해도 최대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직접 대의기구의 대표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느 국회의원 선거에서 총 당선자 300명 중 모 대학 법대 출신이 50명을 넘지 못했다고 해서 동문들이 ‘위기의식’을 느낀다는 보도가 난 적이 있다.


해당 대학 동문 중에서도 법대 출신은 우리나라 인구의 0.01%도 되지 않을 것인데 이들이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최소 15%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꼭 이 대학 출신이 아니라도 대부분의 국회의원이 법조인, 고위관료, 교수, 기업인 출신이고 우리나라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임금노동자, 농민, 소상공인 출신 대표는 오히려 극소수인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노동자와 소상공인을 열심히 변호해 왔던 법조인 출신도 있고, 약자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연구한 교수 출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뛰어넘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사회의 기층을 이루는 대중이 직접 대표자로 선출되는 것은 다른 개념이다.


이처럼 직접민주주의와 직접정치는 아직 일반인들 사이에 인식이 희미하고 정작 이것을 적극적으로 외치는 진보세력 안에서도 이론적 개념정립이 어설픈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뛰어넘어 민중주권 실현을 위한 필수적인 두 개의 축인 직접민주주의와 직접정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제 진보세력들 사이에 치열한 토론과 현장 실천을 위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 이 연재는 이론적 논의와 현장의 고민에 대해 세부주제별로 좀 더 심층적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