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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0일은 지역에 따라 호우경보나 호우주의보가 발령된 날이었습니다. 29일 늦은 밤부터는 이곳 청주에서도 천둥·번개를 동반한 장대비가 대단했더랍니다. 그리고 불탄의 가정은 바로 그날, 이사를 하게 되었고요.

이사라는 것도 하나의 시스템인 것 같습니다. 내가 나가야 내가 살던 곳으로 누군가 들어오고, 그동안 살고 있었던 사람이 나가야만 나도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사라는 것이 단순히 이삿짐의 이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금에서부터 시작하여 잔금에 이르기까지 유기적으로 엮여있는 "금전의 순환구조"까지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어쨌든 이사를 하기로 되어있는 30일 새벽녘까지도 세차게 내리쳤던 비는 조금도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날씨 점검을 해 봤더니 늦은 밤이나 다음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칠 것이라 했고요.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이삿짐센터로 전화를 걸어봤지만 통화는 할 수 없었습니다. 점점 불안한 마음만 커져갈 때 쯤, 창밖으로 이사짐센터 차량이 사다리차를 앞세우며 주차장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 보였고, 그걸 보는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졌습니다.

'아! 이사를 하긴 하려나 본데?'

서둘러 초등학교 2학년과 1학년의 두딸을 학교로 보내고, 이제 생후 7개월이 되어가는 막내딸은 어머니 등에 업혀 대피를 시켰습니다. 아기를 보는데 필요한 보행기와 분유, 기저귀 등은 불탄이 낑낑거리며 옮겨다 드렸고요.

다행히 사다리차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그렇게 세차게 내리던 비가 잠시 그치더랍니다. '그럼 그렇지! 아직까지는 하늘도 불탄을 그렇게 미워하지는 않는가 보다!'하는 마음이 절로 생기더군요. 가급적이면 이사짐에 비를 맞히지 않고 싶었던 불탄에게는 너무나도 반가왔던 날씨의 변화였을 겁니다.

3시간 남짓의 이사짐 포장이 끝나자 사다리차를 이용해 본격적으로 이삿짐차에다 옮겨 실었습니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는 이사할 집으로 이동을 했고, 도착을 하자마자 또 다시 사다리차의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짐 올리는 건 점심을 먹고 나서 해야겠어요."
"네. 그러세요. 저희도 일을 좀 볼 게 있어서요."

두딸이 학교를 마치고 아버지를 따라 갔는지 전화로 확인을 해가며 그동안 살았던 집으로 다시 건너갔습니다. 빠뜨린 것은 없는지에서부터 쓰레기처리는 확실하게 되었는지까지 전부 체크했습니다.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 그때까지의 전기요금과 수도·하수요금은 검침을 하고 안내 받은 금액을 각각 봉투에 담았습니다. 믈론 그 봉투 안에는 도시가스직원에게 지불한 요금과 철수비용 내역이 담겨있는 영수증도 넣어뒀습니다.

다시 이사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슬슬 짐을 올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이삿짐센터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장농이 놓일 위치, 냉장고와 세탁기가 세워질 곳을 지정해주고 있는데 '아뿔사~' 이건 뭐...... 그냥 하늘에서 빗물을 내리는 게 아니라 거의 쏟아붓는 수준이더랍니다.

혹시 장대비 속에서 이사 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건 그냥 말 그대로 '전쟁'입니다.

아무리 보호천이나 이사박스로 포장을 잘 했다손 치더라도 하나씩 거풀을 벗겨낼 때마다 흥건히 고이는 빗물 때문에 정리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게 되더군요. 언제까지 이삿짐센터 직원들을 붙잡아 두고 '여기에 두세요.', '저기에 세워주세요.'를 요구할 수는 없으니까요.

결국......?

한곳에 모아 쌓아달라고 했습니다. 물론, 주방기물이나 박스 채 보관하려 했던 것은 원하는 만큼 정리를 시킬 수 있었지만 말입니다.

허나 대부분의 짐정리는 천천히 할 수밖에 없었기에 어린이 날인 오늘까지도 계속해서 짐정리를 해야만 합니다. 덕분에 어린이 날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던 두딸은 집앞에 있는 놀이터를 몇번이고 왔다갔다 하는 걸로 위안을 삼아야 하지요.

큰딸 예린이

작은딸 예진이

두딸의 공부방


그래도 한가지 다행인 것은 두딸의 공부방이 이틀 전에는 아주 확실하게 꾸며졌다는 겁니다. 아이들 할머니께서 그동안 이사하면 장만해 주시겠다며 벼르셨던 책상도 이참에 들여놓았고요. 난생 처음 자신들의 예쁜 책상이 생긴 두딸은 좋아서 강아지 마냥 펄쩍펄쩍 뛰어 다녔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아이들 할머니께서는 풀어놓은 강아지를 보는 것 같다며 흡족해 하셨던 것 같습니다.

노곤해지는 오늘입니다. 연신 돌아가는 세탁기에서 이사할 때 젖었던 옷가지며 이불가지를 꺼내 말리는 아내도 힘든 건 마찬가지겠지만 말입니다. 물론, 아이들도 나름 이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을 테고요. 그치만 앞으로는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희망이 커지면 현실로도 분명히 나타나겠지요. 더 열심히 살아가자고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다짐을 해 봅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