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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의 두딸은 방학 중 특기적성교육으로 원어민영어와 컴퓨터교실에 나란히 다니고 있습니다. 수업을 마친 큰딸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배가 아프기 시작했나 봅니다. 어떻게 겨우겨우 집에까지 오기는 했지만 통증이 너무 심했던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겨우 뱉아낸 말이란 것이......

"아빠! 나 배 아파요."
"뭐? 어디가? 얼마나 아픈데?"

아빠의 물음에는 답을 못한 채 그냥 새우라도 된 것 마냥 옆으로 구부러지더랍니다. 놀랐습니다. 아주 많이 놀랐습니다. 배가 아프다는 말처럼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건 아마도 없을 것 같습니다.

얇은 이불을 깔고 큰딸을 안아 뉘였습니다. 똑바른 자세로는 눕지를 못하고 모로 눕더니 아프다고만 합니다.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불쌍하고 애처로와 미치겠더랍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머리에 손을 얹어보니 열은 없습니다.

"아빠가 배를 좀 만져 볼께. 아프면 아프다고 얘기 해. 알았지?"
"으......"

조그맣게 주억거리는 큰딸의 입에서는 모기 보다도 작을 것 같은 신음 소리가 겨우 빠져 나옵니다. 큰딸의 배를 쓰다듬어 주면서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던 소아과병원으로 급히 연결을 시도해 봅니다.

시계를 보니 12시 20분, 시간이 어중간합니다. 연결음이 두세 번 들린 후 간호사인 듯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 옵니다. 역시나 예상했던대로 즉시 출발해 봐야 점심시간에 걸리는 시간입니다. 12시 30분부터 2시까지는 소아과병원의 점심시간입니다.

큰딸의 배에서 손을 떼고, 컴퓨터 앞으로 다가 앉습니다. 자판을 끌어내고는 검색창에 몇몇 검색어를 입력해 봅니다. '갑자기 배 아플 때', '초등 2년 복통', '배 아프다고 아이가 울 때'......

여러 글들이 좌르르 하고 눈 앞으로 열려집니다. 대부분이 생활 속에서 이미 경험을 했던 엄마의 글들입니다. 가끔 소아과전문의의 글이 눈에 띄이기도 했고요. 다행히 엄마들이 올린 게시물 중에는 크게 걱정을 해야 할 내용이 없더랍니다. 다만, 전문의가 작성한 글에는 공통적으로 몇 가지 의학적 소견을 피력해 놓았더군요. 우리에게는 맹장염이란 용어가 더 익숙해 있는 충수돌기의 염증과 장염 등에 관한 것들입니다.

얼른 큰딸에게 앉은 자세를 취하게 하고는 엉덩이 윗쪽 허리 부근을 톡톡 두드려 보았습니다. 예전에 불탄이 맹장 수술을 받았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본 것이죠. 이곳을 톡톡 두드리면 오른쪽 배에서부터 전해진 통증이 머리 뒷골까지 타고 올라왔었으니까요. 다행히 큰딸에게는 별다른 통증이 느쪄지지 않나 봅니다.

배를 다시 쓰다듬어주며 혹시 뭉친 곳은 없는지 확인을 하고, 배 양쪽을 살짝 눌러가며 큰딸의 얼굴 표정을 살펴 봅니다. 아무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다만 배의 정중앙을 누를 때만 아프다고 할 뿐입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방법을 그대로 큰딸에게 써먹어 보기로 합니다.

"아빠가 어렸을 때, 할머니는 항상 이렇게 배를 쓰다듬어 주셨어. 그때는......"

이런저런 옛날 이야기를 해주면서 큰딸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니 배는 똥배,  엄마  아빠 손은 약손"이란 말을 조그맣게 하기 시작합니다. 이 마법의 주문이 큰딸의 아픔을 걷어가길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요? 큰딸의 새우같이 구부러져 있던 자세는 자연스럽게 펴져 있더랍니다. 편안해진 얼굴에 새근거리는 것은 잠이 들었다는 뜻일 테고요. 그래도 불탄의 큰딸 배 쓰다듬어주기와 "니 배는 똥배, 아빠 손은 약손"이라는 나직한 마법의 주문은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1시 40분 쯤 되어서 큰딸을 깨워 일으킵니다. 소아과병원 창구에서 진료접수를 하고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는데 큰딸이 이젠 하나도 안 아프다고 합니다. 놀람과 걱정이 걷혀지면서 큰딸에게 고마움을 가져봅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고맙다, 우리 딸'



의사의 처방은 관장입니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화장실에 다녀온 큰딸은 조금 아프기는 했지만 속이 시원하다며 좋아라 합니다. 집에 와서는 남아있는 약 기운 때문에 불안해 하는 큰딸에게 "니가 괜찮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잠시만 이거라도 하고 있을래?"하며 막내딸 기저귀 하나를 내어 줬더니 거부감 없이 받아 들고는 화장실에 다녀 옵니다.

정말로 큰딸의 배 아픔은 약간의 변비 때문이었나 봅니다. "니 배는 똥배, 아빠 손은 약손"이란 마법의 주문이 그대로 맞아 떨어진 셈이지요. 앞으로는 야채와 우유도 잘 먹고, 적당히 움직이고 하면서 건강해 주길 바랍니다.

"어이! 똥배 큰딸! 오늘 배 아픈 거 참아내느라 고생 많았어. 앞으로는 똥배 되지 않도록 열심히 먹고 잘 뛰어 놀아야 돼. 알겠지? 사랑해, 우리 딸!!"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