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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은 당사자에게만 특별한 날이다. 어린 아이들은 축하 의미가 담겨 있는 뭔가를 기대하고, 인생을 어느 정도 알아가는 중년들은 스스로에 대한 존재감을 가늠코자 하지만, 실상은 흐지부지 지나가기 마련이다.

오늘은 큰 딸에게도 아주 특별한 날이라 여겨졌을 터다. 태어난 지 꼭 열 번째 해가 되는 날이었으니...

늘 방학기간에 맞는 생일인지라 특별히 친구를 초대하는 파티라곤 지금껏 해본 적이 없는 큰 딸이지만, 그래도 아빠와 엄마, 그리고 두 동생이 축하해주고 자그마한 선물에 마냥 좋아라 하는 내게는 너무나도 착한 딸이다. 때로는 가족끼리 외식을 하거나, 집에서 몇 가지 음식을 놓고 벌이는 조촐한 파티에도 그리 신나 했으니 말이다.

그런 큰 딸을 동생과 함께 오늘도 그리 보내야겠다는 요량으로 어머니께 맡기고 출근했던 참인데, '어?' 그런데 사무실에 앉아 있는 느낌이 아주 묘하다.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찜찜하고 자꾸만 불안해지는 것이 영 신경을 거스르게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음력 생일을 보내던 형이 몇 해 전부터는 생일을 양력으로 바꿔 지내온 것이 아닌가. 헌데, 그 날짜가 공교롭게도 큰 딸 생일과는 한날이었으니, 그렇다는 것은? 맞다! 오늘은 형에게도 생일이 되는 셈이다. 부리나케 선물 준비를 어떻게 했는지 몰라 아내에게 전화를 넣어 보았더니 "픽~"하니 새는 듯한 웃음이 들려온다.

"아주버님 생일은 집에서 어머님, 아버님과 함께 보내잖아요. 음력으로 따져서 매번 그날 해놓고 무슨 말씀을?"

이런 젠장! 나이를 먹어가니 오락가락 하나 보다. '벌써부터 이러면 큰일인데...'하는 자그마한 두려움이 꾸물댄다. 이제 겨우 생후15개월을 넘어선 막내 딸을 봐서라도 이러면 안되는 데 말이다.

어쨌든 다행이란 생각이다. 큰 딸 선물이야 지난 크리스마스때 미리 아주 따뜻한 방한부츠로 선물했으니 퉁치면 그만일 터, 이따 저녁녘에는 큼지막한 케익 하나 사들고 가 목청껏 생일축하 노래 들려주는 것으로 이번 큰 딸 생일은 쫑내는 거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