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아침에는 커피가 그립다
불탄의 開接禮/마흔 넷의 엘레지 : 2012. 3. 3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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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는 시간,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오늘과 내일 사이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는 뉴스를 봤던 차라 일찌감치 서둘러 집을 나선다. 만원 지하철에서 비를 피해 뛰어온 사람들의 젖은 옷이나 우산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서다.
환승역 지하보도를 걸어 전철을 바꿔 탄 후 사무실 인근 역에서 하차한다.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전해주는 싱그러운 아침 기운이 너무나도 상쾌하다.
저만치 횡단보도가 보일 무렵, 갑자기 장대비로 돌변한 빗줄기들이 내 우산과 바지 밑단을 사납게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나마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선 것에 대한 자그마한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에 조그마한 웃음이 번져 나간다.
일곱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 사무실은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는지 잠겨 있는 상태다. 2~3개월의 한시적 기간 동안 회사가 필요로 하는 자본금 증자업무를 위탁 받은 입장인지라 내게는 사무실 열쇠가 없다.
우산을 접어 한쪽 귀퉁이에 세워두고 누구라도 오기를 기다리는데 오늘따라 커피 한 잔 마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허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커피를 대신할 담배 한 개비를 입으로 가져가는 것뿐이다.
이십여 분을 기다리니 이 주차장 쪽에서 얇은 서류철 하나를 들고 뛰어오는 영업본부장이 눈에 보인다. 자동차를 주차시키기 전에 건물 앞에서 내가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모습을 보았던 모양이다. 정감있게 아침 인사를 서로 나누면서 열린 문을 통해 함께 사무실로 들어선다.
온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종이컵 절반 정도 되게 받아 커피믹스 한 개를 뜯어 넣는다. 은은히 퍼지는 인스턴트 커피 한 잔이 비 오는 이른 아침의 사무실을 깨우고 있는 듯하다.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고 해야 할까?
커피가 든 종이컵을 들고 자리에 가 앉는다. 컴퓨터가 부팅되는 동안 다이어리를 꺼내 오늘 반드시 해야 할 업무 예닐곱 가지를 적어 놓고 우선순위를 매겨본다.
'그래 ! 오늘은 이렇게 업무를 진행하면 되겠어. 어? 근데 오늘이 광고대행사와의 미팅이 있는 날인가 보네.' 협찬과 독립광고를 협의하기 위해 가졌던 1차 미팅 때, 내게 강한 인상을 남긴 여성 하나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빼어난 외모와 풋풋한 젊음, 화려한 화술을 가진 대리 직함의 그녀.
오늘 있을 2차 미팅에는 좀더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협의하게 될 터이니 자료 준비에 바짝 긴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금껏 홀짝이고만 있던 커피를 한 입에 털어 넣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비 오는 날 아침의 커피는 금방 마셨음에도 또 다시 찾게 된다는 거다. 어쩌면 비 오는 날 커피에는 쉬이 해갈되지 않는 그리움이라도 녹아있는 것일까?
- 070628. 불탄(李尙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