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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린아 예진아!

월요일이면 언제나 그렇듯 청주-서울간 새벽 첫 고속버스를 타고 회사로 출근해야 하는 아빠지만 오늘도 전혀 피곤하지 않구나. 세상이 온통 깜깜한 시간에 집을 나서면서 보았던 잠자고 있던 너희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기 때문일 거야. 당분간은 이렇게 주말에만 볼 수 있는 우리 가족이지만 그래도 좀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아빠는 요즘 행복하단다.

그래! 지난 토요일, 아빠가 일주일만에 집에 들어섰을 때 너희는 얼마나 좋았는지 거짓말 조금 보태서 키만큼이나 높게 팔짝팔짝 뛰었지. 아마도 너희가 생각하기엔 꽤나 오랜만에 보는 아빠였을 테니까 그러는 게 당연했을 거야. 그러면서도 땀을 흘리는 아빠를 위해 예진이는 엄마를 향해 에어컨을 세게 틀어달라는 요구를 했고, 예린이는 빨리 샤워부터 하고 나오라며 손수 서랍장에서 속옷과 반바지를 꺼내주었지.

하하... 흐뭇한 마음으로 샤워를 하려는 순간 너희는 욕실 문을 빼곰히 열고는 깨벗은 아빠 뒷모습에다 키득웃음을 터뜨렸지. 유일하게 신체구조가 다른 아빠인지라 다소 민망하다는 생각에 살짝 몸을 돌려 문을 닫았는데, 글쎄 그게 뭬 그리 서운했는지 너희 울음소리가 문밖에서 들리더구나. 허~ 아마도 너희는 샤워를 하는 그 짧은 시간이나마 헤어지는 게 싫었었나 보다.

"예린아! 아빠 많이 보고 싶었어?"
"응, 근데... 오늘 무슨 날이야?"

여섯살 예린이는 아빠가 토요일만 되면 집에 온다는 걸 알고 있기에 새삼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이더구나. 
오늘은 토요일이고 내일은 일요일이라는 아빠의 대답을 듣자마자 너는 일요일에는 회사를 안나가는 아빠니까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며, 함께 놀아달라는 요청을 했지.

그럼, 그럼. 아빠는 예린이랑 예진이랑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이렇게 왔는데 당연한 거지. 흔쾌히 그러겠다는 대답을 하자 너희 두 자매는 엄청 바빠지기 시작했어.

 

 



"와! 신난다. 아빠. 근데 엄마도 같이 놀면 안대까?"
"왜 안돼? 같이 놀아야지. 아빠랑 엄마랑 예린이랑 예진이랑 재밌게 놀자"
"아빠. 그럼 언니가 팬케이끄 만들어 주면 안대까?"
"아이구, 아빠 팬케익 만들어 줄려고? 빨리 만들어주라. 아빠 배고프다."
"알아쪄요. 언니가 빨리 만들어가꼬 오께요"

작은 방으로 달려간 너희는 이때부터 휴지를 찢고, 소꼽장난 가스렌지에 장난감 냄비를 올리고, 주전자 모양의 장난감으로 기름을 두르고 열심히 요리를 하기 시작했지. 그렇게 너희가 요리를 하러 자리를 비운 다음에야 비로소 아빠는 엄마와 눈을 맞출 수 있었고. 그렇게 아빠가 엄마랑 눈을 맞추고, 씩~ 하니 한 번 웃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일주일 동안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걸 너희는 언제쯤 이해하게 될까?

다음 날 아침에는 집 근처에 있는 마트에서 일주일 동안 생활할 여러 가지 물품을 구입했지. 너희가 좋아하는 반찬이며, 음료, 그리고 아이스크림까지. 평소에는 발육과 성장, 식습관을 잘 들여놓기 위해 엄마가 사주지 않는 과자나 빙과류를 아빠한테 얻기 위해 너희는 연신 아빠에게 너희만의 필살기 애교를 날리더구나. 이날을 위해 너희가 얼마나 갈고 닦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너희를 보는 아빠의 마음은 너무나도 흐뭇했단다.

그렇게 구입한 물품을 저녁 무렵 시간에 배달해 달라고 요청을 하고, 우리 네 식구는 손에 손을 이어잡고 가까운 공원으로 나들이를 갔지. 미끄럼틀과 시소를 타면서 오랜만에 집안 생활에서 해방된 너희는 그야말로 아이스러운 웃음을 아낌없이 날렸고 말야. 서울에서 청주로 이사 온 지 벌써 한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지리와 시설에 익숙치 않은 탓에 여지껏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지 못해 미안하더구나. 그러니 이렇게라도 너희를 달랠 수밖에 없는 노릇이고.

이어 쌈용으로 나온 무를 잘게 썰어 고기에 얹어 먹는 저녁식사를 마친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제 또 일주일이 지나야 볼 수 있는 아빠라는 걸 알고 있는 너희는 잘 시간이 넘었는데도 동화책 읽어 달라는 떼를 부렸지. 잠을 자는 것보다 아빠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 탓이었겠지만, 아빠가 열 권도 훨씬 넘는 동화책을 읽어준 후에야 너희는 잠에 빠져 들었지.

예린아 예진아!

아빠, 열심히 근무하고 돌아오는 토요일에는 더 활기찬 모습으로 다시 너희를 보러 내려갈께. 그때까지 엄마 말씀 잘 듣고, 예쁘게 생활하고 있으렴. 아빠는 말이다. 너희를 너무너무 사랑한단다.


- 070711. 아빠가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