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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 딸들아!

사랑은 내리사랑이기도 하려니와 치사랑이라 하더구나. 허니, 아빠도 아빠의 어머니와 아버지께 이미 과분한 사랑을 받았을 테지.

흔히 이르길 부모는 전생에 자식의 빚쟁이라 하더구나. 하여, 주고 주고 또 줘도 더 줄 것이 없나 살펴보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던가? 요즘 들어 그 같은 말이 왠일인지 가슴에 와 닿는 걸 실감한단다.

햇빛 반짝이는 하늘의 푸르름처럼 너희가 태어나 지금껏 굳건히 생명을 이어준 것만으로 아빠는 충분히 행복하단다. 너희 역시 이다음에 결혼을 하게 될 테고, 또 아이를 가지게 되면 그 아이들에게 아빠의 사랑이 이어지겠지.

그렇다고 아빠를 너무 힘들게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예린이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티터에서 몇 주동안 힘겹게 숨쉬며 죽음과 싸웠고, 또 예진이는 자궁에 묶는 수술을 받으면서까지 엄마의 뱃속에서 예정일까지 힘겹게 버텼을 때, 이미 아빠는 견뎌야 할 고통의 끝까지 충분히 가 보았으니 말이다. 너희가 힘들게 하지 않아도 그 때 이미 힘들어했으니까…

지금도 또래 아이들보다 많이 약한 예린이의 내년 유치원 생활이 걱정된단다. 친구들은 초등학교 입학을 할텐데 우리 예린이는 여전히 유치원 열매반을 다니게 되겠지. 조금만 힘들어도 곧잘 넘어지는 예린이에게 초등학생 가방을 메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며칠 전에도 아빠와 할인매장에서 엄마 티셔츠를 사가지고 나오는 길에 넘어지는 바람에 이마에 생채기가 생겼던 것, 기억하지? 지금은 거의 사라져가는 그 생채기가 아빠한테는 지워지지 않는 아픔이 되었단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예린이의 이마에서 사라지는 생채기처럼 아빠의 불안이 사라지게 될런지…


예린이랑 예진이랑



그래도 아빠는 예린이가 언니로서 예진이를 챙기는 것을 보면 많이 대견스럽단다. 유치원에서나 미술학원에서 예진이가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예린이가 항상 따라다니며 챙긴다며 유치원 선생님과 학원 선생님이 혀를 내두르며 칭찬할 때마다 아빠는 흐뭇하더구나. 예린이가 목도리를 놀잇감 삼아 놀고 있는 지금 모습처럼 항상 너희는 그렇게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쁘고 우애있게 자라주는 것, 그것이 바로 아빠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 될 터이니 말이다.


예린이랑 예진이랑



예진이는 언니가 항상 양보하고 져준다고 해서 벌써부터 언니를 괴롭히는 것 같더구나. 언니가 힘이 없어 너한테 뺏기는 게 아니라 언니니까 양보하는 것일 텐데 말이다. 언니는 아빠가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해도 예진이랑 함께 가지 않으면 따라 나서지 않을 만큼 널 많이 사랑하고 있단다. 어제 예진이가 가고 싶어했던 키즈카페에서도 하나 밖에 없는 자전거의 차례를 기다렸다가 예진이에게 끌고가 태워주며 함께 놀았었던 것 기억나지? 결국 예진이가 싫증을 느껴 다른 놀이를 하러 갔을 때야 비로소 언니는 잠깐 동안이나마 마음껏 자전거를 타며 크게 웃었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채 5분도 타지 못한 채 예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해코지라도 당할까, 혹시 넘어지지나 않을까 부리나케 달려가 손까지 잡아줬잖니?


예린이랑 예진이랑



지금 사진에서처럼 예진이가 머리에 쓰고, 목에 두르고 있는 미니마우스 모자, 목도리 세트도 언니는 그렇게도 하고 싶어하는데 예진이는 한번도 양보하지 않았지. 매일 밤, "내일은 언니가 해"라고 했던 약속이 벌써 한달이 다 되어 간단다. 그래도 언니는 예진이한테 힘으로 빼앗거나 아빠 엄마한테 도움을 청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거 알고 있을 테지? 그러니 이제는 아빠도 예진이가 언니한테 양보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구나.

아빠는 항상 이런 모습을 보고 싶단다.
즐겁고 행복한 웃음을 보이면서 서로 안아주고, 서로 이해해며,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왜냐하면 아빠가 생각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게 바로 이렇게 환한 빛을 머리 위로 비추며 서로에게 따뜻한 마음을 주는 것이라 믿으니까… 또한 이렇게 서로의 체온을 느끼도록 함께 붙어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순간 만큼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근심과 걱정도 침범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사랑하는 내 딸들아, 아빠는 말이다.
이런 행복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더 크게 키워나가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생활할 거란다.


- 08.12.01. 아빠가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