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넷의 엘레지[05] 토크송 - 겨울이야기
다방 문을 열면 워럭하고 달려드는 귀멍멍이 음악과 굴뚝 같은 담배연기, 매번 겪는 일이지만 잠깐동안 흠칫하지 않을 수 없다. 낮은 실내 조명에 적응하길 기다기다 쭈욱 훑어 보는 시야 저편에 익숙한 형체가 들어온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가장 구석진 테이블을 앞에 둔 채 오두마니 앉아 있다.
엉덩이 먼저 쭈욱 밀며 자리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 메뉴판을 내려놓은 여자가 껍 씹던 입은 다문 채 눈으로만 묻는다. 뭘 시킬 거냐는 것이겠지. 습관적으로 먹지도 않을 커피 한 잔을 큰 소리로 주문한다. "아, 참! 블랙으로 갖다 줘요" 염병, 식으면 더 써져서 결국에는 마시지도 못할 것을…
요행히 잘 알고 지내는 DJ형과 눈을 맞추고 느긋하게 담배를 한 개피 빼어 물자, 기다리던 음악이 흘러나온다.
"나, 이 노래 싫어"
- 왜"
"꼭 내 이야기 같잖아. 이름도 똑같고…"
- "그래서 DJ한테 신청한 건데? 광분의 레이저 빔까지 쏘아가며. 아! 근데 눈깔에 너무 힘 줬나 보다. 빠질만큼 아프다"
푸하하하, 웃는다. 하얀 피부의 그녀가 웃을 때면 늘 갈증이 난다. 뜨거운 커피로도, 얼음이 절반인 콜라로도, 살짝 데운 우유로도 도저히 이놈의 갈증은 잦아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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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끝날 무렵 다시 그녀의 입술이 열린다.
"단지 그것 뿐일까?"
- "뭐가?"
"아니, 그냥 사귀다 그렇게 둘이 돌아서면 헤어지게 되고, 헤어지면 그냥 그 뿐인 게 되는 거냐고."
- "글쎄, 안 그렇겠지. 그냥 그 뿐인 게 어딨겠어? 글고 안 헤어지면 되지."
겨울이야기-이장희 옴니버스 음반
- "응? 그랬어? 그냥 노래 가사가 좋잖아. 애달프고, 절절하고, 쉽게 누구씨가 생각나고…"
"난 슬픈 노래가 싫어. 가사대로 진짜 그렇게 될까 봐"
- "……"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속으로만 우물댄다. '넌 만나는 날부터 이미 헤어질 생각부터 하고 있었잖아. 늘 그래. 너와는 어떤 얘기를 해도 마무리는 항상 이별이었어. 넌 그러면서 왜 나한테만 그러지 말라는 거니? 나 널 만날수록 좋아하게 될수록 겁 나. 니가 떠날까 봐'
애써 웃어보이며 담배 한 개피를 다시 꺼내 문다. 그녀의 손이 테이블 위 1회용 라이터를 향하더니 불 붙이기 좋은 위치에서 멈춘다. 눈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대신 하고는 길게 한 모금 들이마신다. 천천히 내뱉아진 연기가 그녀의 귓가에서 흩어진다. 어쩌면 좀 전의 혼잣말을 그녀에게 다 이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미 짙게 내려앉은 노량진의 어둠이 흑석동에 이르러선 술을 부른다. 걸음이 통나무 민속주점 앞에서 멈추자 잠깐 사이 그녀의 눈에서는 놀라룸이 묻어난다. 이내 앞장 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 오늘따라 더욱 작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