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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금 횡령 등으로 도덕성에 문제가 제기된 문형표 복지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제식구 감싸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명박근혜 정부와 그 정권의 치세하에서 보란듯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흠결은 마이너스 요소가 아닌 반드시 갖춰야만 할 스펙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지난 11월 12일~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문형표 복지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경과보고서 채택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청문회 과정에서 한국개발연구원 재직시절의 문형표 복지부장관 후보자가 법인카드를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제대로 된 해명을 문형표 후보자는 해내지 못했었 게 사실이고요.


출처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허나, 지금에 와서는 그런 것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마치 박근혜 정부에서의 공금 횡령 정도는 성공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스펙일 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라는 것이 그 정도의 부도덕성을 갖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정치 경제 문화의 지배층이 되고자 하는 꿈을 포기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국회 의견을 무시한 채 문형표의 복지부장관에 임명 강행에 혈안이 되어 있는 박근혜 정부과 새누리의 작태가 전혀 새삼스레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참 서글픈 댓글공화국입니다. 어이상실의 반민주공화국이기도 하며, 공직자의 도덕성이 지탄의 대상이 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부도덕과 불법이 성공의 지름길인 미쳐버린 나라, 너무나도 평범했던 검찰의 총장과 지청장이 영웅으로 추앙받는 비상식의 나라, 20차례가 넘는 촛불시민의 목소리를 침묵으로 화답하는 죽어버린 언론 즉 근조언론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혼잣말이라도 반대 의견을 낼라치면 어느새 종북인사로 낙인 찍혀버리는 공안통치의 나라이며, "공산당이 싫어요"가 6~70년대의 애국이었다면, 어느새 지금은 "이명박근혜가 싫어요"가 빨갱이일 수밖에 없는 유신독재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러한 나라이니 만큼 공직자의 도덕성 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가 봅니다. 10점 만점 중에서 "이명박근혜가 좋아요"를 외치는 외눈박이 국민에게는 한 8점 정도를, "반인반신의 박정희"를 외치는 두눈박이 장님들에겐 너끈히 9점 정도를 주나 봅니다. 자신의 약점을 고스란히 저당잡힌 채 스스로 '정권의 개'로 살기를 소망하는 정치꾼이나 관료쟁이들은 그야말로 현 정권이 인정한 "10점 만점에 10점" 인물로 살 수 있을 테고요.

하지만 실제 무서운 건 이러한 임기직으로서의 "정권의 개"들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고작해야 4년이나 5년 동안만 제밥그릇을 챙기는 속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들보다 더욱 두려워해야 할 것들은 바로 영세세습을 도모하고 있는 "탐욕의 돼지"들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스스로의 정체를 철저히 감춘 채 정권창출에 깊숙히 관여하고, 새로운 정부출범을 조정하며, 그에 기여한 인물들이 스스로 내놓은 약점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생사여탈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그런 인물들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보건복지부장관이란 타이틀은 사회복지정책의 수장으로서 공적연금과 기금 등 막대한 복지재정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과 인품이 중요한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공금횡령이라는 도덕적 흠결 정도는 그야말로 관리가능한 범위 내의 스펙일 뿐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야당이나 시민단체가 요구하고 있는 고위공직 후보자로서의 자격조건 타령이 그처럼 허망하게만 들리나 봅니다.

어차피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는 기초연금안을 비롯한 대부분의 복지공약을 국민적 저항과는 무관하게 강행할 것이고, 그에 따른 허수아비 복지부장관이 필요했을 뿐이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가 선택한 인물이 바로 문형표였을 테고요. 그러니 국민된 입장이라면 문형표 후보자에 대한 낙관적 기대를 그 누구도 쉽사리 할 수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미 야성을 상실한 야당들로서도 차려진 밥상에 어떡해서든 숟가락만이라도 올리려 할 뿐 더 그 이상의 의미를 두려하진 않을 테고요.

시쳇말로 '몰빵'과 '한발걸치기'의 기로가 어쩌면 바로 지금의 세상일지 모르겠습니다. 그 만큼 선택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라고 한다면 권은희, 채동욱, 윤석렬 등과 같은 인물이 시대의 영웅이 아닌 '보통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이 마땅하지 싶습니다.

곪을대로 곪아버린 지금의 세상을 개혁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권력의 정점에 가까이 근접해 있는 이들의 결단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진보를 표방하면서도 기득권층에 한 발을 걸쳐놓는 이중적 태도보다는 지도층의 의무를 다한 민주주의로의 '몰빵'에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깨어있는 시민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마중물 역할에 기꺼워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친일과 미 군정하의 부역자들로부터 매국행위를 부끄러워 하는, 뉴라이트로부터 우리의 역사주권을 당당하게 지켜낼 수 있는, 친재벌정부로부터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그런 세상으로 한걸음씩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의 다른 이름은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