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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노무현재단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된 글 하나가 불탄의 가슴을 잔잔한 여운에 젖게 합니다. '사람의 향기에 눈물색을 담았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 참여정부 윤태영 전 비서실장 칼럼, "대통령이 걸음을 옮겨 내 옆자리에 앉았다" 바로 가기



2001년 말 아니면 2002년 초, 여의도 금강빌딩에서 민주당의 대통령후보 당내경선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외부일정을 마친 노무현 상임고문은 사무실 인근의 음식점에서 몇몇 참모들과 간단히 요기를 했다. 식사를 마친 노 고문 일행은 걸어서 사무실로 이동했다. 청문회 시절만큼 인기는 없었지만, 여의도 바닥에서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드문 편이었다. 민주당의 후보 경선 탓에 인지도도 다시 높아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차가 다니는 대로에서 금강빌딩이 위치한 비교적 넓은 골목으로 일행이 들어설 무렵, 오토바이 한 대가 노 고문 앞으로 다가오더니 갑자기 멈춰 섰다. 헬멧을 쓴 운전자가 그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동행한 참모들은 여의도에서 길을 걷다 보면 종종 만나는 적극적 지지자 가운데 한 사람일 것으로 생각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여의도 지리를 묻는 퀵서비스 기사였다. 기사는 자신이 길을 묻고 있는 상대방이 정치인 노무현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생업에 바빠 정치와 정치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때마침 기사가 찾는 목적지를 노무현 고문이 알고 있었다. 그의 자상한 길 안내가 시작되었다.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면서 여의도 서편의 지리에 대한 설명이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기사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동행하던 서너 명의 참모들은 꼼짝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기사가 떠나고 그와 참모들은 다시 사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참모들 그 누구도 "우리에게 맡기시지 왜 직접 가르쳐주셨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정치인 노무현의 캐릭터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후보시절 만들어졌던 많은 슬로건 가운데 그가 가장 선호했던 것도, 2001년 말 출판기념회 때 사용한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강한 나라'였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