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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자협회가 오늘 있었던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입장 발표를 비중있게 보도했습니다. 앞으로 청와대의 일상적인 '비보도' 전제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난 5월 8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의 '비보도'(오프 더 레코드) 전제 '계란 라면' 발언은 그야말로 '엄청난 파문'이라 할 만한 이슈였습니다. 입장이 난처해진 청와대로서는 이를 보도한 경향신문·오마이뉴스·한겨레·한국일보 소속 기자들에게 '기자실 출입정지'라는 보복성 중징계를 내렸고, 이 같은 '뻘짓거리'는 곧바로 엄청난 비난의 태풍이 되어 청와대 전체를 강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연히 청와대의 대응이 궁금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겠습니다만,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이 같은 결정은 여론에 대한 회유책일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국적으로 들고 일어난 비난 여론을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청와대의 일상적인 비보도 전제에 대해선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는 아주 저렴한 입놀림만으로도 무마시킬 수 있다면, 그보다 남는 장사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12일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경향·한겨레 등이 요청한 재심을 받아들이고, 추후 징계 경감을 재논의하기로 했다"는 결정을 보도하면서, "다만 일부 기자들은 징계를 받은 언론사들이 기사를 통해 청와대 출입기자단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켰기 때문에 징계 경감은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습니다.


예서 잠깐!!


문제가 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의 '계란 라면' 발언은 지난달 16일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진도체육관에서 컵라면을 먹어 물의를 일으켰던 당시 서남수 교육부장관을 적극 옹호하려 했던 것에서 기인했습니다. 아울러, 그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라면에 계란을 넣어서 먹은 것도 아니고, 끓여서 먹은 것도 아니다. 쭈그려 앉아서 먹은 건데 팔걸이의자 때문에, 또 그게 사진 찍히고 국민 정서상 문제가 돼서 그런 것이다.


2014/05/09 - [불탄의 촛불누리/시사 뷰포인트] - 청와대 대변인의 '서남수 라면' 옹호-보도 언론사들 줄줄이 중징계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 같은 민경욱 대변인의 말이 '비보도'를 전제로 했다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세월이 좋아도 너무 좋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하고픈 말 때문에 입이 '근질근질' 할 때마다, "이건 '오프 더 레코드'인데 말이야", "어차피 알려질 얘기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비보도'를 전제로 하는 말인데"라며 다 까발리는 게 그들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여 그 같은 말들이 정권유지나 확장에 플러스적인 요소라도 될라치면 "왜 그렇게 좋은 소스를 가지고 지금껏 보도 하나 안한 건데?"라며 기분 좋은 쪼인트를 까였을 것입니다. 반면, 마이너스 요소라도 될라치면, "비보도(또는 엠바고) 전제를 묵살한 응분의 대가를 받으라"며 온갖 압력을 행사했을지도 모를 일이고요.

어쨌든,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한국일보 등은 이에 대한 기사를 보도했고, 그에 따른 보복성 중징계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에 청와대 기자단은 이들 언론매체들의 '비보도' 파기를 이유로 청와대 기자실 출입을 금하는 중징계를 결정하게 된 것이고요.

이로써 오마이뉴스와 경향은 63일, 한겨레는 28일, 한국일보는 18일이란 기간 동안 청와대 기자실을 출입할 수 없게 되었으며, 청와대에서 배포하는 보도자료 또한 제공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은 매한가지였습니다.

한국기자협회는 민경욱 대변인의 '계란 라면' 발언이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외교문제나 대통령의 신변안전 등 비보도 전제 요건에 해당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물론, "그와 같은 중요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라면에 계란을 넣고 안 넣고는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더욱이 '대통령의 입'이라 할 수 있는 청와대 대변인이라면 당연히 언어 선택에도 신중해야만 한다는 건 '거지발싸개'라고 해도 알고 있을 법한 상식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민적 저항이 거셀 때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아무리 청와대라 할지라도, 고위 인사일수록 언행에 조심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6.4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요즘이다 보면,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볼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비보도' 전제를 무시한 채 보도를 선택한 언론사들을 향해 각각 일정 기간 동안의 '청와대 기자실 출입금지' 결정을 내린 바 있는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고민이 얼핏 이해될 법도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이 같은 결정은 단지 만시지탄일 뿐, 제대로 된 반성이나 방향점은 아닐 것 같다는 데 있습니다.

이 대목에 '딱'하고 어울리는 한마디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그러게……. 그리도 아니 될 것 같았으면 차라리 입술에 침이라도 잔뜩 바르던가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