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2014년 2월 페이스북이 새로운 앱을 출시했다. 미국의 애플 앱스토어에 iOS 버전만 올렸다. 안드로이드용 앱은 아직 없다. 사용자 반응을 보기 위한 실험용 같다. 이름은 ‘페이퍼(Paper).’ 알파벳 다섯 자의 간단한 단어. 뭐 그저 그런 기능을 가진 메모장처럼 보인다. 그런데 다운받아 실행하면 그게 아니다.


Paper



‘Beautiful Storytelling’ 이라는 소개 문구처럼, 나와 친구, 세상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새로운 플랫폼이다. 페이스북의 친구 소식은 물론 Headline, Tech, Enterprise, Pop Life, Planet 등의 대분류에 속한 세상의 이야기를 골라서 볼 수 있다. <타임>, <뉴욕타임즈> 같은 전통매체의 뉴스도 선택할 수 있다. 가로 방향으로 잡지 페이지를 넘기고, 세로로 접힌 신문을 펴는 것처럼 가로, 세로 방향으로 현재 화면을 가볍게 밀어서 넘길 수 있다. ‘페이퍼’ 라는 앱 이름 그대로 종이로 만든 잡지, 신문에 익숙한 손의 운동 감각을 화면 창에 되살려냈다. 매 페이지의 중심에는 인스타그램식의 정사각형 사진 이미지를 배치했다. 페이스북이 왜 1조원이나 들여 인스타그램을 인수했는지 이유를 조금은 알 거 같다. 페이스북은 무엇을 노리고 페이퍼를 띄웠을까?


■ 미디어 플랫폼으로 진화한 페이스북

‘페이퍼’ 와 비슷한 앱은 이미 여럿 있다. 사용자에게 관심 분야의 사진과 정보를 제공하는 핀터레스트(Pinterest), 플립보드(Flipboard)가 대표적. 박물관의 큐레이터 역할을 하는 편집 알고리즘이 넘치고 흐르는 인터넷, 모바일의 정보를 선별해서 사용자에게 쏴준다. 제공하는 콘텐츠의 생산자는 주로 일반인, 아마추어들이다. ‘페이퍼’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임>이나 <뉴욕타임즈> 같은 매체의 전문적인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콘텐츠를 큐레이션해서 제공하기 시작했다. 나름의 기준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선별해서 올린다. 이미 2013년 페이스북은 질 낮은 콘텐츠는 뉴스피드에 제공하지 않겠다는 기준도 밝혔다. 페이퍼를 내놓음으로써 페이스북은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넘어서 이제 미디어 플랫폼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왜 페이스북은 SNS에 만족하지 않는 것일까?

물에 가해지는 열에너지의 양이 늘어나면 임계점에 달한 어느 순간 물은 끓기 시작한다. 자연계의 ‘양질 전환의 법칙’은 사회적 현상에도 적용된다. 개인 간의 안부, 이야기 전달로 시작한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는 사용자가 늘면 그 단순한 기능에 머물지 않는다. 늘어난 사용자를 상대로 판매자나 기업의 광고가 실리고, 사용자는 더 전문적인 콘텐츠, 이야기를 원하고 찾는다. 카카오톡을 사용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경험해 봤을 것이다. 친구들끼리 관심 있는 뉴스의 링크나 게임 앱, 동영상 파일을 주고받는다. 광고성 대화 초대도 늘어난다. 카카오톡뿐만 아니라 유튜브, 네이버 등 많은 사람을 끌어모은 플랫폼일수록 날마다 광고와 홍보 콘텐츠를 늘린다. 하지만 거기에만 치중하면 사용자는 이탈한다.

플랫폼은 사용자에게 더 많은 당근을 줘야 한다. 플랫폼이 계속 유지되고 확장하려면 사용자 만족도를 높이는 전문적이고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를 더 많이 더 자주 제공해야 한다. 네이버의 지식백과, 어학사전 서비스가 가장 좋은 예다. 네이버는 일 년에 한 명의 사용자만이 검색하는 표제어도 지식백과에 올린다. 어학 사전 서비스는 서구 언어를 넘어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언어로 확장하고 있다. 알리바바와 아마존의 상품 카테고리와 아이템 수, 애플과 구글의 앱스토어에 등록된 앱의 수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세상에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전문적이다. 다양성과 전문성은 플랫폼의 본질이자 최대 강점이다.


■ 지상파 TV의 설익은 플랫폼

PC 인터넷과 모바일 스마트폰이 시청자에게 비디오를 전송하게 되면서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플랫폼이 등장했다. 시청자(수요자)와 제작자(공급자)가 확연하게 구분되지 않는 유튜브, 시간적 제약을 받지 않고 시청자의 자기 선택적 편성이 가능한 푹(Qook), 티빙(Tving) 같은 서비스는 플랫폼의 장점과 특성을 채택했다. 지상파, 케이블 TV같이 공급자 위주로 프로그램을 한 방향으로 전송하던 방송사들도 생존을 위해 플랫폼으로 전환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말은 플랫폼이지만 지상파의 상황은 부끄러울 정도다. 실시간 편성으로 나가는 프로그램을 ‘다시보기’ 수준으로 올려놓고 플랫폼이라고 한다. 시청률 높은 킬러 콘텐츠의 제작에 자원의 대부분을 투자하고 그 성공에 목을 맨다. 킬러 콘텐츠는 플랫폼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단일한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승부가 나는 시절은 갔다. 진정한 플랫폼이 되려면 더 많은 종류의 콘텐츠, 각계각층, 남녀노소의 취향과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전문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확보해야 한다.

플랫폼 사업자는 수요-공급의 다른 측면에 있는 두 집단에 편의성, 이익, 가치를 제공하면서 하나의 장으로 끌어모은다. 플랫폼에서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은 동질성이나 의존성을 느끼고 (Community), 자원을 공유하며 집단의 지혜를 모으고(CrowdSourcing), 플랫폼 안에서 연결된 경험 (Connected Experience)을 공유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현재 지상파의 플랫폼은 설익어도 너무 설익었다.

더 많은 시청자를 끌어 모으기 위해 킬러 콘텐츠를 제작,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다.

1. 시청률에 잡히지 않는 사용자를 겨냥해서 콘텐츠의 다양성을 확보해야한다. 그러려면 지상파가 보유한 자원(영상과 시스템)을 외부 제작자들에게 개방 ․ 공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갈수록 시청자의 취향은 예측하기 힘들고 트렌드의 변동은 심해진다. 이런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지상파가 축적한 자원을 제 3의 개발자들에게 개방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게 해야 한다. 확보한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성공 확률도 높아지고 '롱테일의 효과(The Long Tail)'도 볼 수 있다.

2. 게시판, 상담 전화 받는 정도의 시청자 서비스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사용자가 콘텐츠 생산에 참여하고 제 3의 주체가 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시청자가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지상파 플랫폼을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로 느끼게 해야 한다. 콘텐츠 생산에의 자발적인 참여, 그를 통한 공동체적 긴밀성의 생성이 핵심이다.

아직은 설익은 지상파의 플랫폼, 지상파의 임직원이 플랫폼의 기본 철학과 가치를 체화하고 제대로 실현하면 떫은맛이 가실 날이 올 것이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