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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서울은 데이트 약속을 어떻게 했을까?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무선호출기(일명 "삐삐")가 있었기 때문에 나름 데이트 약속을 하기가 수월했습니다. 물론 지금이야 휴대폰이 있으니 아무 때나 수시로 문자나 통화를 할 수 있으니 상관없겠지요.

그러나 80년대만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연락을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해봐야 손편지를 쓰거나 용기를 내서 집전화로 통화를 시도해야 했습니다. 그마나 남자에게는 누나나 여동생, 여자에게는 오빠나 남동생이 있으면 쥐포나 아이스크림을 미끼로 좋아하는 이성과의 전화통화가 가능했지만 그런 여건을 만들 수 없는 사람들은 아주 답답해 하곤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지나가는 이성에게 아래와 같이 용기를 내 부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 죄송한데요. 여자친구한테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 도와주실래요?"

그 당시에는 그런 경우가 많았었고, 또 그런 부탁을 받는 사람 역시 그런 경험을 한두 번 정도는 이미 겪어본 터였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부탁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떤 때에는 그런 상황을 일부러 연출하며 지나가는 이성과의 교제를 도모하기도 했었지요.

"친구한테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도와주세요."
"왜요? 직접 하시죠."
"네... 그 친구 엄마가 제가 전화 거는 걸 아주 싫어하세요."
"여자 친구한테 하는 거에요?"
"아뇨. 저 여자친구 없어요."
"호호..... 네. 알았어요. 그럴께요."

공중전화로 집전화 번호를 누른 뒤 전화기를 건네줍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 동건이 친구 소영인데요. 동건이 좀 바꿔주세요."
"응? 동건이 나갔는데?"
"아... 그래요?"
"나중에 동건이 오면 전화 왔었다고 말해줄까?"
"네. 부탁드릴께요. 안녕히 계세요."

전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동건이 왜 찾으셨어요?"
"네?"
"제가 동건인데요. 무슨 할 말 있으셨어요?"
"호호호..."

하긴, 이 방법도 왠만큼 봐줄 만한 마스크와 유머가 없는 이들에게는 작업의 정석으로 전수를 해줘봐야 성공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운 것이니 그림의 떡이겠지만서도.

각설하고, 휴대폰이나 삐삐가 없었던 몇해 전만 해도 우리의 유일한 연락수단은 이렇게 공중전화였습니다. 그러나 집전화 번호를 알아내기란 그렇게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친해지기 전까지는 대부분 헤어질 때 다음 약속을 미리 정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개중에는 뜬구름 잡는 것처럼 들리는 약속도 있었지요. "비오는 날 거기에서 보자."라던가 "첫눈 오는 날 기다리고 있을께."등과 같이 말입니다.

어찌됐건 이런 특별한 상황이 매번 오는 것이 아니었기에 어디에라도 미리 만남의 장소를 정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약속 장소로 애용했던 곳은 어디일까요? 생각나는대로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다만 서울이라는 땅덩어리가 크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은 미리 드리겠습니다.


역전의 시계탑


서울역 시계탑, 청량리역 시계탑, 영등포역 시계탑...

실제로 주말 오후나 휴일에는 위에 열거한 시계탑 주변에는 수시로 손목시계를 쳐다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저마다 약속 시간이 넘어도 나오지 않는 친구나 연인을 발을 동동구르며 기다리는 모습은 무척이나 초조해 보이기까지 했지요. 그러면서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 이웅평 씨가 북한 전투기를 가지고 넘어온다던가

- 한 국가의 대통령이 방한을 하기 때문에 학생들을 동원한다던가(공항에서부터 학생˙공무원들은 태극기와 해당국가의 국기를 흔들었습니다.)

- 어수선한 시국에 맞서는 시위대를 막기 위해 교통을 통제한다던가....

하는 경우에는 영락없이 한두 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했으며, 특별히 연락할 수단이 없는 상태이니 만큼 그 당시 그 정도의 기다림은 일상다반사였고, 또 당연시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존심 강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 재미있었습니다. 자신이 약속 때문에 지금 길거리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딴청을 피우기도 하고, 개중에는 공중전화나 상가 간판 뒤에 숨어서 약속했던 장소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경우도 많았으니까요. 어쩌면 약속했던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늦게 도착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자.존.심. 때문이었겠죠.

그렇게 자신이 먼저 도착하여 여지껏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뒤 늦게 온 것처럼 보이게 하는 필살기는 바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많이 기다렸죠?"라는 멘트를 자연스럽게 날림과 함께 아주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 겁니다.


역이나 정류장 인근의 유명한 장소


그냥 순서없이 열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몇 번의 만남을 가진 탓에 서로가 만남의 장소로써 인식할 수 있는(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나 자주 가는 커피숍과 같은 특정한 장소) '그때 거기에서......'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위에서 언급한 각 기차역 시계탑이나 광장을 기본으로 하여 영등포 롯데리아나 연흥극장, 강남역 뉴욕제과, 노량진 정아제과, 종각 보신각, 종로 3가 영화관(피카디리·단성사·허리우드), 시청 덕수궁이나 창경궁, 광화문 교보문고나 세종문화회관, 나중에는 휴일이면 차량까지 통행을 금지시켰던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등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만남의 장소로 사람들은 이런 장소를 택했을까요?


- 찾기 쉽고
- 누구에게나 물어봐도 쉽게 알 수 있으며
- 혹시라도 약속 장소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많이 알려진 곳은 기억에도 오래가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이런 곳을 선호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 이곳은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한 데이트 코스와 직·간접적으로 이어져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서울역은 시계탑이나 광장에서 길 건너의 대우빌딩을 우측으로 끼고 남산으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남산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타워에서 서울시내를 감상하던, 식물원 관람을 하던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았지요.

청량리역은 가까운 시외로의 이동에 적합했습니다. 교외선이나 경춘선을 타고 한 두시간 거리에 있는 야외로의 이동은 신선한 감동을 줄 수 있었습니다.

종각은 보신각 바로 뒷편으로 형성되어있던 먹자골목은 데이트를 즐기는 선남선녀들로 항상 만원이었습니다. 골목 양쪽으로 즐비하게 이어져 있는 천냥하우스나 호프촌은 저렴한 데이트를 가능하게 만들어줬기 때문입니다. 또한 종로3가 근처에는 지금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개봉관이 밀집되어 있어 많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였습니다.




시청이나 광화문은 일종의 문화적인 교감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다던가, 공연을 관람한다거나, 시집을 비롯한 책선물을 하면서......

대부분 이곳을 찾는 커플들은 감성을 자극하는 데이트를 선호했던 것 같습니다.


90년대에는 삐삐가 있었습니다.


이런 장소들은 90년대 중반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약속 장소로 이용되었습니다. 그런데 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약속 장소의 대명사였던 이곳에서 아주 재미있는 상황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무선호출기 때문입니다.

90년대 초중반에는 무선호출기(일명 "삐삐")가 대 유행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너 나없이 삐삐 하나쯤은 모두 가지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오빠였고, 허리춤에 차고 다니면 아저씨였습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삐삐를 핸드백 안에 넣고 다녔는데 아무리 시끄러운 장소라 할지라도 그녀들은 호출을 귀신같이 알아차립니다. 이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해보면 신기할 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당시 삐삐에서 나는 호출음은 모두가 거의 비슷비슷했습니다. 재미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이 호출음 때문에 나타나는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가령 어느 누구의 삐삐가 먼저 울어대기라도 하게 되면,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모두 제각각의 모습으로 허리춤을 추스리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또 핸드백을 뒤지는 것이죠. 그 모든 이들의 손길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다 한 사람씩 동작이 멈추게 되고, 한 사람씩 자기 호출기에서 내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주변에 있던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굉장히 무안해 하거나 겸연쩍은 표정을 짓게 되는 거지요.


그때가 그립습니다.


80년대 그 시절에는 이성친구나 연인과의 약속에서 한 두시간 정도 기다리는 것은 기본 에티켓이었던 것 같습니다. 휴대폰과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의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비가 오거나 기후가 나쁘거나 몹시 추운 날이면, 외부에서의 기다림이 불가능하게 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 만남을 약속한 많은 사람들은 쏟아지는 비나 매서운 겨울바람을 피하기 위해 지붕이 있거나 바람,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벽 뒤로 피하게 되면서 몰리게 되는데 그 모습도 장관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자리에서 이성친구나 연인에게 바람맞은 남녀가 상대남녀에 대한 보복성 심리가 발동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즉석만남의 인연을 각지고 하였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면서 만들어낸 손편지에는 부끄러운 고백으로 가득하였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한쪽 코를 막고 억지로 이성의 목소리를 연출하면서까지 연인과 통화를 하려고 했던, 바로 그 시절이 지금은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