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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K 의혹에서 최순실 이름 등장, 연설문 개입까지


'최순실' 이름 석 자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총괄선대본부장이었던 김무성 의원의 말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최순실을 본 적은 없지만 존재는 알고 있었다. 박 대통령 옆에 최순실이 있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느냐. 그걸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첫 단추를 끼운 곳은 TV조선이었다. TV조선은 7월26일 민간문화재단 미르가 설립 두 달 만에 대기업 자금 486억 원을 끌어모았고, 여기에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깊숙이 개입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900억 모금 미르·K스포츠재단 창립총회는 가짜', '의문 투성이 쌍둥이 재단 미르·K스포츠' 등 10여 개 보도로 두 재단의 '미스터리'를 부각했다. '안종범 수석, 미르 재단 인사도 개입', '차은택 '대통령 심야 독대' 자랑하기도', '박 대통령 행사마다 등장하는 미르·K스포츠' 등 정부와의 연계성을 강조했지만 아무도 받아 쓰지 않는 외로운 단독일 뿐이었다. TV조선 보도는 8월18일 이후 중단됐다. 조선일보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처가 부동산 의혹을 보도해 청와대와 갈등을 빚었고 그 뒤 벌어진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 사태와 맞물린 시점이었다.


이대로 묻히는 듯했던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은 9월22일 한겨레 보도로 다시 떠올랐다. 국내 언론에 최순실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한겨레는 미르·K스포츠재단과 전경련의 비정상적인 커넥션, 최씨 딸 정유라씨의 대학생활 특혜 등을 제기했다.


▲ 김의겸 한겨레 선임기자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에게 최순실 보도 재채를 촉구한 칼럼 - 한겨레 9월29일자 캡처


한겨레는 전담팀을 꾸려 본격적으로 최순실 의혹에 매달렸다. 김의겸 한겨레 선임기자는 9월29일 칼럼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님께'에서 "조선이 물증을 확보한 듯한데 보도는 실종됐다"며 최순실 보도 재개를 요청했다. 김 선임기자의 촉구에 응답한 것은 조선일보나 TV조선이 아니라 경향신문, 중앙일보, JTBC였다. JTBC는 10월19일 승마선수인 정씨의 국가대표 훈련 일지 조작 의혹을, 경향신문은 10월13~14일 정씨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 학사 특혜 등을 잇따라 보도했다.


▲ 경향신문 10월18일자


K스포츠재단과 최씨 모녀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도 언론 보도로 드러났다. 경향신문은 10월18일 "K스포츠재단이 한 재벌기업에 80억 원의 추가 지원을 요구하며 명목으로 제시한 프로젝트 주관사가 최씨와 딸 정씨가 소유한 독일 회사 비덱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10월19일 "K스포츠재단이 최씨와 정씨의 승마 훈련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K스포츠재단과 정씨를 연결하는 '유령회사'의 실체가 드러났다"며 "독일에서는 더 블루 케이(The blue K)라는 이름으로, 서울에서는 (주)더블루케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두 회사의 주요 구성원들은 K스포츠재단의 직원으로 등록돼 있다"고 했다.


한겨레, 경향신문 등의 가세로 정국이 '최순실 게이트'에 휩싸인 가운데 10월19일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불명예 사퇴했다. 정씨가 이대에 입학할 당시 체육특기자 전형에 승마 종목을 신설하고, 서류 마감 후 정씨가 받은 아시안게임 성적을 입시에 반영, 입학 후에는 학칙을 바꿔 학사에 특혜를 줬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라 이대 학생들, 교수들이 퇴진을 요구한 뒤다.


의혹이 쌓여 게이트가 되고 '국정 농단'이 되기까지 JTBC의 보도가 결정적이었다.


▲ 10월24일 JTBC가 최순실 컴퓨터를 입수해 파일들을 분석해 보도했다. - JTBC '발표 전 받은 44개 연설문... 극비 '드레스덴'까지' 보도 영상 캡처.


먼저 JTBC는 10월20일 '비선의 비선 고영태 "최순실, 연설문 고치는 게 취미"'를 보도했다. 고씨의 진술은 나흘 뒤 사실로 드러났다. JTBC는 최씨의 컴퓨터를 입수해 파일들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고, 큰 파장이 일었다. 최씨가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 등 연설문을 사전에 받아봤고 이를 수정한 정황을 파악해 보도한 것이다. JTBC 보도는 모든 언론이 최순실에 집중하게 된 신호탄이었다. 이튿날 종합일간지 대부분은 JTBC 보도를 인용해 1~2면에 비중 있게 다뤘다. '개헌'을 국면전환용 카드로 내놨던 박 대통령은 JTBC 보도에 결국 대국민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에서 "최순실씨는 과거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도움을 줬다"며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의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JTBC의 보도를 인정했다.


JTBC가 연속 보도를 예고하자 그제야 TV조선이 쌓아뒀던 최순실 자료들을 풀기 시작했다. TV조선은 최씨가 박 대통령의 의상을 전담하고 청와대 2부속실 행정관들이 최순실을 '상전 모시듯' 하는 영상을 내보냈다.


JTBC는 박 대통령의 연설문 등 정부의 기밀문서가 담긴 태블릿PC를 새롭게 제시했다. JTBC는 "유출 문서 작성자 중 아이디 '나렐로(narelo)'를 쓰는 사람은 정호성 부속비서관"이라며 "정 비서관은 박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 중 한 사람이다. 최씨의 국정 개입 의혹이 박 대통령의 해명처럼 '집권 초 잠시 있었던 일'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이 아닌지 의심해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보도했다.


이후 한겨레가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을 4차례 인터뷰해 '최순실 지시로 SK에 80억 요구... 안종범은 확인전화' 등을 보도하면서 정국은 '최순실 소용돌이'에 더 크게 휩싸였다.


다음날 세계일보의 최씨 단독 인터뷰는 국민과 정치권을 또 한 번 충격에 빠뜨렸다. 최씨는 연설문 수정은 "신의로 한 일"이라며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언론이 보도한 미르·K스포츠재단과 연루, 국정·인사 개입 의혹 등에 대해선 일체 부인하고 있다.


언론 보도로 밝혀진 '최순실 국정 농단' 여파로 박 대통령 지지율은 14%로 곤두박질쳤다. 취임 후 가장 낮은 수치다. 국민들은 대통령 하야와 탄핵을 촉구하고 나섰고 정치권에서도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최씨가 귀국해 검찰 조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새로운 의혹과 정황이 쏟아지고 있다. ‘최순실 보도’는 현재진행형이다. [ 한국기자협회 ]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