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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제4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로 술렁이던 오전 10시30분, 광화문광장 한켠에서는 '인권친화적학교+너머운동본부'가 주최하는 "청소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나이 50에 이른 불탄도 30년전 쯤으로 돌아가 '내가 최초의 청소년 대통령이 되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젖게 만든 기자회견이었습니다.


'인권친화적학교+너머운동본부'는 지난 10월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내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이런 상상 해본 적 있나요?"라는 물음과 함께, "최근 한 중학생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되었습니다. 얼핏 발칙해 보이지만, 듣다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주장이 담겨 있었지요. 내가 해도 이것보단 잘하겠다! 싶거나 헬조선을 떠나지 못할 바엔 조금이라도 바꿔보자는 생각을 품고 있다면 이 설문조사에 응답해주세요"라며 청소년들의 참여를 독려한 바 있습니다.


아울러,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는 청소년에게 투표권도 주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청소년에게 대표로 선임될 권리가 실현된 세상을 꿈꾸어 본다"며, "청소년들의 눈과 입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말하고, 우선해결 과제를 제시함으로써 청소년들의 사회 전반에 참여할 권리를 주장한다"는 입장까지 함께 밝혔는데요, 그렇다면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먼저 교육/청소년 분야에서는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싶은 만큼!' 시험 축소와 입시획일화 교육 폐지"가 63.01%로 1위, 그리고 “'8시간 이상 강제학습은 아동학대다!' 학습시간 줄이기"가 45.6%로 2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어, 사회 분야에서는 “'먹고 살 걱정 없이'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 보장"이 46.1%로 1위, 그리고 “'뭐가 무서워 숨기냐?' 세월호 진상규명"이 38.4%로 2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밖에도 "위안부 협상 무효"(37.3%), "비정규직 없는 세상"(36.2%)도 높은 지지를 받아 청소년들의 사회불안이 높고 역사 왜곡에 대한 문제의식도 높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한편, 기자회견에 참여한 ‘청소년 대통령’들은 "근로기준법은 가르치지도 않는 입시교육의 문제점", "늘어만 가는 학습시간과 입시 압박", "청소년들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소득의 절실함", "국가가 구조하지 않았던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 등에 목소리를 높이며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들 청소년 대통령들의 대국민 담화문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미지 출처 - 인권교육센터 '들'


“우리의 민주주의를 꿈꾸기를 주저하지 맙시다”

광화문 광장에서 ‘청소년 대통령’ 2016. 11. 19.


국민 여러분. 저는 혼란스러운 이 시국에 청소년들이 바라는 세상과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고자 아주 특별한 이름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청소년 대통령’. 제 나이로는 대통령 당선은커녕 후보 등록조차 할 수 없다는 거, 네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근데 그게 지금 뭣이 중한가요. 저기 보이는 청와대 지붕 아래 아직도 대통령 행세를 하고 계신 분도 어차피 진짜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저 청와대에 계신 분과 저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분은 드라마 주인공의 이름밖에 못 빌리시겠지만, 저는 이 땅 청소년들의 이름을 빌려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금껏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해왔던 우리 청소년들이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세상을 요구하기 위해, 청소년이 단지 유권자를 넘어 교육감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고 대통령도 될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기 위해, 청소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은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과 다르지 않음을 말하기 위해 ‘청소년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어른들은 흔히들 말해 왔습니다. 어린애들이 정치에 대해 뭘 알겠느냐고. 학교에서 얌전히 공부하고 있으면 우리 어른들이 다 알아서 해줄 거라고. 그래왔던 어른들이 지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민주주의를 물려주게 돼서 미안하다고. 묻겠습니다.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10여 년의 보수정권 아래서 어른들의 살림살이만, 어른들의 민주주의만 엉망이 되었을 것 같습니까? 이 헬조선에서 언제 벼랑 끝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어른들만의 것입니까? 타고난 수저 색깔과 상관없이 입시와 취업에서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고 있습니까? 어떤 일터에서든 차별과 착취 없이 정당한 제 몫을 받으면서 일할 수 있나요? 우리 사회에 상식과 정의라고 할 만한 게 남아있기는 한가요? 지금의 ‘노(No) 답’ 상황은 바로 우리 청소년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금껏 겪어왔고, 앞으로도 겪을 절망적 현실입니다.


며칠 전 수능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찾아온다던 더 나은 미래는 어디로 가버렸나요? 지금의 입시제도는 세상의 모든 ‘정유라들’이 부모의 금수저를 물려받는 걸 정당화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요? 우리는 마치 영화 줄거리조차 모른 채 동원된 엑스트라가 된 기분입니다. 대학 가려면 인간이길 포기하래서 공부하는 기계려니 죽은 듯이 살았는데, 그동안 찍고 있었던 영화가 ‘내부자들’이라니요! 뭘 자꾸 바꾼다고 교육정책에 손댈 때마다 우리를 쪼는 강도는 심해져 왔습니다. 더 치열해지기도 불가능해보였던 입시가 매해 더 빡세지는 기적(?)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나라 꼴도 엉망이고, 청소년들의 미래도 엉망진창입니다. 이러려고 내가 태어났나, 이러려고 내가 미성숙한 시민 취급 받으며 투표도 못한 채 살아왔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땅 청소년들과 함께 그저 주저앉아 있지는 않으려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난다고 해도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최초의 청소년 대통령이 된다면’이라는 설문조사를 통해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청소년들은 학대 수준의 가혹한 학습노동과 획일적 입시교육으로부터 해방을 꿈꾸고 있었으며, 누구에게나 존엄한 삶의 기본이 보장되는 세상을 열망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만하면 됐다던 세월호의 진실 찾기와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잊지 않고 시대적 과제로 제기하고 있었습니다. 툭 하면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드라마 주인공처럼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일들을 너무 쉽게 잊어왔던, ‘현실은 원래 그런 거야’라며 체념하고 외면했던 어른들과는 달리 말입니다. 그밖에도 학생인권 보장, 비정규직 없는 세상, 위안부 협상 무효, 차별 없는 세상과 같은 강렬한 열망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요구들이야말로 바로 이 땅에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저는 ‘청소년 대통령’으로서,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청소년들이 제시해준 나침반을 따라 청소년들이 바라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힘쓰겠노라 약속드립니다.


가짜 대통령도 물러나고, 가짜 민주주의도 물러나야 합니다. 청소년들은 이런 나라를 물려줘서 미안하다는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바꿔주길 무기력하게 기다리기보다 우리가 직접 바꾸겠습니다. 우리는 ‘청소년들이 참 기특하네’라는 위계적인 평가에도 갇히고 싶지 않습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청소년들도 평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원합니다. 이와 같은 사회는 청소년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보장될 때 더 성큼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청소년들은 우리에게 선거권, 피선거권이 보장되었다면 나라 꼴이 이 모양은 아니었을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에게 참정권이 보장된다면 온 나라가, 청소년을 무시하는 사회가, 무자비한 교육정책이 바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만19세 미만의 참정권을 압살하고 민주주의로부터 청소년을 멀찌감치 떼어놓은 지금 사회를 바꾸겠다고 약속드립니다. 비청소년인 국민 여러분도 청소년에게 참정권이 보장되는 세상을 상상하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시고 지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이 자리에 서게 해주신 청소년들에게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전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 속에 이미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움직이는 만큼 저는 미래로부터 현재로 성큼 건너와, 여러분의 진짜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꿈꾸기를 주저하지 맙시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