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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치의를 정식으로 임명한 건 1963년 박정희 때였습니다. 종두법을 도입했던 지석영 선생의 종손인 내과전문의 지홍창 박사가 '제1호 대통령 주치의'였습니다. 그리고 2016년 현재의 대통령 주치의는 차관급 대우를 받는 무보수 명예직이지만 '2급 국가기밀'에 속한 대통령의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대통령 주치의는 2주에 한 번씩 대통령의 건강을 확인하고, 진료 과목별로 30여 명에 이르는 주치의 자문단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의료계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 주치의에 누가 임명되느냐가 주요 관심사였고, 대통령 주치의 자리를 놓고 국내 유력 병원 간 자존심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군 통수권자이자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대통령의 건강 상태는 단순한 '건강' 그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지난 2014년 11월 6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박종준 대통령경호실 차장은 "어느 나라나 국가원수의 건강상태는 그 나라의 국가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비밀로 전부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건강이 언제나 국가기밀로 다뤄진 것은 아닙니다. 필요에 따라 청와대가 공개하기도 하는데, 지난해 4월 말 박근혜 중남미 순방 이후 민경욱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의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하루나 이틀 정도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 검진 결과 과로에 의한 만성 피로 때문에 생긴 위경련으로 인한 복통이 주 증상이고 인두염에 의한 지속적인 미열도 있다"고 세세히 밝히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최근 '2급 국가기밀'이라는 대통령 건강에 관한 온갖 정보와 소문이 세간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가장 놀라운 건 대통령의 건강을 책임지는 청와대 의무시스템과 대통령 주치의가 비선 실선에 의해 구멍이 뚫리다 못해 붕괴 상태였다는 점인데요, 그돌 그럴 것이 대통령 주치의와 청와대 의무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선 의사를 통해 의학적 근거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영양주사를 맞고, 민간병원을 통해 혈액검사까지 받은 것으로 드러났으니 기함할 노릇입니다. 더우기 청와대 의무실 또한 이런 상황을 방조했고, 비선 의사가 의학적 근거가 불명확한 치료를 일반인도 아닌 대통령에게 시술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아닌, 지원까지 했다고 하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지경이더이다.


12월 14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3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서창석 서울대병원장과 이병석 세브란스병원장 - 라포르시안


여기에서 끝이 아닙니다. 지난달 26일에는 대통령 주치의를 지낸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이 기자회견에서 태반주사, 감초주사, 마늘주사 등 의학적 근거가 없는 주사제 처방이 자신의 통제범위 바깥이라는 무책임한 변명까지 늘어놓더니 오늘(12월 14일) 있었던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3차 청문회에서는 증인으로 출석한 김상만 전 대통령 자문의가 "자문의로 임명되기 전에도 청와대 관저로 직접 의료장비를 챙겨가서 태반주사를 2~3번 놔줬다"고 진술했다죠?


그러니 비선 실세인 민간인이, 민간병원에서, 민간인의 이름으로, 대통령에게 투여할 주사제를 대리처방했다는 천지개벽할 사실에 대해서도 전혀 새삼스럽지 않게 느껴집니다. 오죽하면 대통령씩이나 되는 사람이 줄기세포 주사 등과 같은 의료시술을, 그것도 무료로 받았다는 혐의(뇌물죄)로 시민단체의 고발까지 받았을까요?


이와 관련 보건의료서비스의 대안언론을 지향하는 '라포르시안'은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보면서 적어도 한 가지는 명확해졌다"며 "박근혜 정권에서는 대통령 주치의가 국정책임자인 대통령의 건강관리를 책임지는 명예로운 자리가 아니라 '비선 의사'만도 못한 허울뿐인 자리였다"고 개탄했습니다.


결국 박정희가 공식 도입한 '대통령 주치의' 시스템을 그의 '딸' 박근혜가 완벽히 말아먹었다는 사실에 대해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국정화 역사교과서를 동원하면서까지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치부를 가린 채 영웅화·우상화에 매몰되었던 박근혜, 그간의 빗나간 효심이 '말짱 도루묵'으로 발현되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