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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음력 10월 18일, 바로 불탄의 생일입니다. 뭐 하나 이뤄놓은 건 없어도 마흔 해가 훌쩍 넘도록 생일만큼은 꼬박꼬박 찾아옵니다. 그래도 가족이 있으니 조금은 즐겨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의 안정도 생깁니다.

매일 아침은 비슷한 풍경으로 시작하는 것이 우리네 일상입니다. 그런데 어제와 오늘의 저희 집 만큼은 매일 맞는 아침과는 조금 색다른 풍경으로 시작했습니다. 웬일로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한테는 꼭두새벽일 텐데 평상시와는 달리 너무도 이른 시간에 일어나 주방과 욕실, 거실을 뛰어다니며 키득키득 소리를 냅니다.

어제는 그렇게 서로 “쉬. 쉬.” 소리를 내면서 비밀스러운 작업(?)을 하던 아이들이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아빠! 눈 좀 감아 봐요.”라고 하더니 양쪽으로 나뉘어 아빠라는 이름의 제 손을 하나씩 잡고는 거실로 인도하더라고요. 뭔가 자기들이 아침 일찍부터 꾸민 계략을 실천하려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아직 많이 어둡더군요. 아직 해가 없는 것인지, 비가 내리려는 날씨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거실을 밝히는 등을 켜지 않은 것인지......

'이런! 세상에나~'





아이들이 만든 아빠의 깜짝 생일파티였습니다. 아내가 케이크에 초를 꼽고는 불을 붙이자 눈으로 시작을 알렸는지 아이들 입에서부터 생일축하노래가 조그맣게 흘러나옵니다. 부모가 된 이후 가장 즐거운 생일상은 자녀와 함께 하는 것이라는 진리를 여실히 느끼게 되는 순간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왜 하루를 앞당긴 이른 아침에 생일파티를 해줬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습니다. 뭔가 이유가 있었을 테지만 아마도 휴대폰에 충전되어있는 던킨케이크 교환권(18,000원짜리) 하트콘으로 아내가 케이크를 그 전날 퇴근하면서 가져온 것을 아이들이 먼저 냠냠(?)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케이크의 모양도 던킨케이크 교환권으로 바꿀 수 있는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아니고 얼마의 돈을 더 보태야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너무나 귀여운 아기곰 형태를 갖추고 있었으니 여태껏 한 번도 캐릭터 케이크를 보지 못했던 아이들은 신이 났을 겁니다. 그러니 빨리 먹고 싶어 했겠지요. 그래서 아이들은 분명 엄마를 채근했을 테고 아내는 아이들이 부리는 고집에 그냥 져주었을 겁니다. 아침식사 준비를 피할 수 있다는 고도의 계산이 아내에게도 숨어있었을 테니까 말입니다.


깜찍 스노우 베어가 촛불의 역광으로 무시무시하게 보이네요.



추측과 결론을 내리고 나니 그렇게 예쁘고 고마웠던 아내와 아이들의 생일축하에 대한 행복이 일순 얼음이 되려 합니다. 그러나 곧바로 케이크를 잘라 접시에 받쳐 먹으며 떠들고 즐거워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제 마음도 덩달아 엔돌핀이 넘쳐나면서 가슴에는 행복감이 차오릅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가족 모두가 즐거워하니 전부 잘된 것 아니겠습니까?


던킨 크리스마스 케이크 곰돌이 방울이 모자

2007년 뚜레쥬르 양머리 핸드머프




그나저나 함께 딸려온 곰돌이 방울이 모자가 너무 귀엽다고 어제도 그렇고 오늘 아침에도 신경전을 벌이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지난번에도 케이크를 사면서 받은 핸드머프 때문에 중재하기 힘들었는데 말입니다. 벌써 두해 전의 일이었으니 올해는 아이들 스스로가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요?


결국 착한 언니가 양보했나 봅니다. 작은아이가 곰돌이 방울이 모자를 먼저 착용하니까 어찌할 도리가 없어진 큰아이는 아예 눈을 감아 버립니다. 작년까지는 그래도 요렇게 큰아이가 착용하고 있는 양머리 핸드머프가 나름 인기였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모두가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서로가 바쁜 처지다 보니 함께 식사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아내나 저나 아침 식사는 잘 안하는 편인지라 어쩌다 입으로 가져가는 음식이라는 것이 저는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계란프라이나 빵 종류를 선호하고, 아내는 다이어트용 시리얼이나 삶은 검은콩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허나 오늘은 진짜 생일날 아침이라고 미역국까지 끓여서 막내처남까지 자리를 같이하여 다섯 명의 가족이 좁은 밥상머리에 모여 아침식사를 하게 된 겁니다.

가족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 것도 꽤 오랜만이라 그런지 나름 훈훈하고 좋은 느낌입니다. 다만, 식사 후에 또 이불 속으로 들어갈 막내처남도 오늘 같은 날이 아니면 밥 먹으라 깨워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아이들도 한 시간이나 일찍 일어난 까닭에 혹시나 유치원에서 힘들어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렇게 이틀씩이나 아빠를 위해 일찍 일어나 준 우리 고마운 두 딸아이에게 오늘 너무나 큰 고마움을 느낍니다. 또 그렇게 이끌어준 아내에게도 감사하게 되는 오늘입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