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기각 태극기집회-성조기는 왜 흔들까? 죽여도 된다는 빨갱이들은 과연 누굴까?
“빨갱이는 죽여도 돼”(?)
- 보도연맹의 악몽과 블랙리스트 : PD저널 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2017. 1. 25
탄핵 반대 집회에 왜 성조기가 보일까?
‘애국’은 좋다고 해 두자. 왜 하필 성조기를 흔드는 걸까?
그들의 기억이 한국전쟁 시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지 싶다. 미국은 1950년 북측의 기습 남침에서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해 줬고 지금도 북측의 핵위협에서 대한민국을 지켜 줄 혈맹이자 은인 아닌가. 이 참에 “비상계엄 선포하라”는 구호도 난무한다. 탄핵 정국을 뒤엎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이 구호에 솔깃할 것이다. ‘내란 선동 혐의’로 실제 고발됐지만 이들은 막무가내다. 이 와중에 성호스님이란 분은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섬찟한 손팻말을 들고 나타났다. 살기등등한 구호를 외치는 사람이 하필 스님이라니! 미물의 생명도 소중히 여겨야 할 불자가 앞장서서 살생을 설파하다니!
▲ 지난 1월 21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제10차 박근혜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대회'에 참석한 성호스님이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고 적힌 모형 방패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제주 4·3, 여순사건, 보도연맹 등 해방 이후 한국전쟁까지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나로서는, 작금의 친박 시위를 보며 일종의 ‘데자뷔’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전쟁 이전에 이미 3만 명 넘는 국민을 학살하여 반대세력을 궤멸시킨 이승만 정부는, 인민군이 38선 전역에서 공격해 오자 황급히 후퇴하며 보도연맹원을 소집하여 학살했다. “인민군에 협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죄’가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죄를 저지를 ‘위험’이 있으므로 미리 처형한다는 논리였다.
보도연맹(保導聯盟)은 해방 이후 좌익단체에 가담했거나 동조한 혐의가 있는 사람들을 자수시켜 국가가 보호해 준다고 결성한 단체다. 1949년 6월 기준으로 가입자 수가 33만 명을 넘었고, 전쟁 초기에 학살된 사람이 20만 명에 이른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농민도 상당수 포함됐다. 보도연맹 학살 때 어머니가 희생된 대구 이광달씨에 따르면, 그 시대는 아무나 죽여 놓고 “빨갱이 죽였다”고 하면 오히려 칭찬받는 ‘악마의 시대’였다.
이 무시무시한 ‘빨갱이 사냥’이 아직 끝나지 않았단 말인가! 반대자들을 ‘빨갱이’로 몰아 기득권을 유지한 역대 독재자들의 행태는 최근 ‘종북몰이’를 거쳐 ‘블랙리스트’까지 이어졌다. 만에 하나 북의 김정은이 무력시위를 하고 트럼프의 미국이 강경하게 대응하여 한반도가 전화에 휘말릴 경우, 1만 명 가까운 문화인 블랙리스트는 ‘살생부’로 돌변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언론계 인사, 시민운동가, 노동운동가들 중 ‘요주의 인물’로 분류된 사람들의 명단이 따로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면, 한국전쟁 초기의 보도연맹 학살과 같은 끔찍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게 아닌가.
물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상상일 뿐이다. 블랙리스트의 책임자인 김기춘과 조윤선이 구속된 것은, 이 시대가 한국전쟁 당시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을 빨갱이로 낙인찍어 “죽여도 좋다”고 외치는 낡은 행태는 이 나라 한켠에서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특히, 이를 조장하는 세력이 다름 아닌 정권 수뇌부라는 점은 전율할 만한 일이다. 정권을 비호하는 집회를 사주하고, 비판세력을 욕하는 댓글을 달게 하고, 전쟁세대의 공포감을 부활시켜 극단적인 폭력을 합리화하는 것, 그리하여 세대와 지역을 갈라놓고, 다양한 의견의 공존을 막고, 역사를 1950년 비극의 시대로 되돌리는 것. 이 끔찍한 ‘저강도전쟁’이 국가의 주도와 비호 아래 버젓이 횡행하고 있는 현실은 악몽처럼 두렵다.
2월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 걸음 전진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 등 각 분야의 개혁이 본격 시동을 걸어야 할 중요한 시기다. 저절로 주어지는 개혁은 없는 법, 2월은 살얼음을 딛는 듯 조심조심 건너야 할 위태로운 한 달이기도 하다. 이 길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다. 이 나라 국민들끼리 살생의 언어를 주고받는 일만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