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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소리내어 들리지는 않았지만 뭔가 불편하게 심기를 건드리는 느낌에 잠을 뒤척거리는 밤입니다. 그렇다고 자정 무렵 잠들기 전에 항상 한잔씩 마셨던 것이 커피였으니 조금 전 마셨던 커피가 이유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뭔지 모를 낯선 느낌에 날씨 탓을 하며 바닥에 깔려있는 보온 매트의 온도까지 확인을 했지만 언제나처럼 이상이 없었기에 더욱 찝찝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이불을 머리 위로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려다 결국에는 “에이~”라는 소리와 함께 벌떡 일어나 봅니다. 벌써 한자나 튀어나온 불만의 입을 앞장세우며 신경질적으로 방문을 열고 나와 주방으로 향합니다.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 시원스럽게 한잔 목으로 넘기고 나니 없던 정신이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봅니다.

아! 무슨 불쾌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이제야 그 미세하게 전해왔던 불편한 느낌의 출처가 수도에서 나는 물소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욕실에서 들려왔던 그 소리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었기에 낯선 느낌을 동반하면서까지 그렇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리게 했나 봅니다.


욕실의 불을 켜고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뭐, 뻔한 이야기겠습니다만 가족 중 누군가가 세면대의 수도를 사용했고, 제대로 잠그지 않았던 거였죠. 그것도 하필이면 냉수 쪽이 아니라 온수 쪽이었고 말입니다. 가뜩이나 작년부터는 보일러에서 물을 보충해달라고 ‘삑삑~“ 대는 소리가 빚쟁이가 채근하는 소리만큼이나 자주 들려왔었기 때문에 귀에 거슬렸던 데다가, 올해 들어서는 정기적으로 가스점검을 해주던 청주도시가스 주부사원까지 자꾸 보일러의 노후를 거론하면서 새 보일러로의 교체를 권유받고 있던 터라 온수 쪽 수도꼭지를 잠그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일러 전체를 교체하려면 꽤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은 당연할 것이고, 거기에다 공사가 시작하면 하루나 이틀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그만큼의 불편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 더욱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베란다 개조를 하면서 바닥을 지나는 열선에도 어떤 트릭을 썼는지 방바닥마다 차고 뜨겁고의 차이가 심한 것까지 조정하려면 아마도 엄청난 공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지금으로선 이런 저런 고민을 해봐도 뚜렷이 어떤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저 나부터 조심해야 되겠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수도사용에 대한 주의를 당부함으로써 지금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좋은 쪽으로 이끌기 위한 노력이 우선되어야겠지요.

뭐, 가족에게 우리나라가 물부족국가라는 거시적인 말까지 들먹거리지는 않더라도 일단 가스요금이나 수도요금부터 아끼자는 취지에서는 반드시 꺼내야 할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얼핏 눈에 들어온 오늘의 이 모습이 오늘만 있었던 단발성 사건이었고, 또 그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는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앞으로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 또한 없다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욕실의 불을 끄는 손가락에는 여전히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이 피곤이라는 이름으로 어지럽게 매달려 있습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