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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한 여성은 시댁이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잘하면 본전이요 못하면 구설수에 오르기 때문이랍니다. 물론 이러한 말 자체가 지금껏 통상적으로 이어 내려온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정도는 묵인되거나 요구되었던 사항이었던 것만큼은 누구도 부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여전히 이 사회를 감싸고 있는 보수적인 사고로는 외부적인 변화의 물결과 보폭을 같이 하는 것이 조금은 버거워 보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세상은 아주 조금씩, 속도를 내며 변해가고 있습니다. 아니, 또 어떤 면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알게 모르게 가정의 구성원들 자체가 과거의 인습이나 습관이 점점 불편하다거나 답답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나름대로 변화해 나가는 움직임을 활발히 보이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혹여 그렇지 않은 생활을 하는 가정도 아직까지는 있겠지만 앞으로 그 추세는 점점 더 빨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여성들이 시댁에 부담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혼을 한 남성의 입장에서도 처가 식구들을 어려워하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차피 남편이다 아내다 하면서 입장을 들먹거리기 전에 서로가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각각의 가정에서는 그야 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장중보옥이요 금지옥엽으로 성장했을 테고, 그런 사람들이 결혼을 했다고 해서 성별로 따져 어느 한쪽으로 무게중심을 더 기울인다는 것 자체가 좋아보일 수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저 역시 그렇게 귀한 딸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처가 어른들의 품안에서 떨어뜨려 내 품으로 안았으니 그 책임이 크다 할 수 있겠지요.

오늘은 두 달을 조금 넘는 시간동안 이곳에서 함께 생활했던 막내처남이 처가 어르신들께로 돌아간 날입니다. 지금까지도 막내처남을 보면 아들 같은 느낌이 많이 들고, 막내처남 역시 제게 그런 느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실 홀가분하면서도 한구석이 허전합니다. 홀가분하다는 것은 처가식구가 함께 있으니 알게 모르게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요, 허전하다는 것은 좀더 데리고 있으면서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 연애시절의 아내는 저보다 여덟 살이 어렸었고, 막내처남은 그런 아내보다 무려 열세 살이나 더 어렸습니다. 막내처남을 처음 본 것이 겨우 초등학교 1학년 코흘리개였을 때였고, 그 당시 장사 때문에 신경을 쓰지 못했던 처가 어르신을 대신해서 막내처남을 돌보고 있던 아내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는 그 코흘리개 어린아이를 함께 보살필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주변에서는 막내처남을 제 아들로 보는 경우가 꽤나 많았었고, 일일이 "지금은 목하 연애 중이고, 이 아이는 여기 있는 이 애인의 막내동생"이라고 변명 내지는 대꾸를 하는 것도 뭣해서 그냥 흘려 듣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막내처남이 아들로서 느껴지게 되더랍니다.





장인, 장모님의 이 늦둥이 아들에 대한 사랑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막내처남의 말투에는 아직도 애기목소리가 실려 있고, 행동 역시 불안하기만 합니다. 자형과 누나를 거의 부모처럼 생각해서인지 가끔씩 어리광을 부릴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피식~'하니 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저녁무렵에 서울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기 전까지 은근히 불안해했던 것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주위에서 너무 어리게 대한 것도 있겠지만 저 역시 막내처남을 너무나 어린 시절부터 봐왔기 때문에 성인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그렇게 보지 못한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막내처남이 있는 동안 저 스스로 신경을 많이 썼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내 마음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혹시라도 서운해 했을 행동을 한 적은 없었나 하고 지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하나씩 더듬어 보게 됩니다. 주는 마음과는 다르게 받아들이는 마음은 언짢을지도 모르겠다 싶은 상황이 떠오를 때마다 골치가 지끈거립니다. 조금 더 다독거리고 조금 더 챙겨줬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매번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이제와서 조바심을 내봐야 소용이 없겠지요. 장인어른께서 이달 말에 가족끼리 조촐하게 송년회라도 하자고 말씀하셨으니 그때 같이 내려올 것이고, 아무래도 부족했다고 생각한 게 있다면 그때 다시 챙겨주면 되겠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주 솔직하게 지금까지도 아들처럼만 느껴지는 막내처남이 그래도 처가식구라는 생각에 은근히 신경이 쓰입니다. 눈이 있으니 본 것이 있을 것이고, 귀로 있으니 들은 것이 있을 것이며, 입이 있으니 옮길 수도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그런 부담은 앞으로 점점 더 커지게 되겠지요.

아내가 시댁식구에게 신경을 쓰는 만큼 남편도 처가식구들에게 어려움을 갖게 되는 것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것이며, 얼마 지나지 않아 시댁과 처가를 비교하는 무게중심의 추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