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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주말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보내는 아이들을 데리러 본가에 갔더니 아이들이 실뜨기 놀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토요일이었던 어제는 원래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연 만들기 전통학습이 있었던 날이라 두 딸애들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도 추운 날씨와 아빠, 엄마의 개인사정을 이유로 등원을 시키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유치원에 가지 못하고 곧바로 본가로 향해야 했던 아이들은 시위라도 하는 듯 더욱 실뜨기 놀이에 몰입을 하고 있었나 봅니다.

“얘들아! 아빠 왔다.”

곁눈으로 슬쩍 쳐다보며 '네"라는 성의 없는 대답을 보이는 아이들한테 아주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도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은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았기에 애들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난 뒤 아이들 옆에 털썩 주저 앉습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실뜨기 처음자세를 하고 난 다음 번갈아 가면서 순서대로 진행을 하다보면 반드시 대여섯 번 뒤에 찾아오는 거미줄 단계에서 번번이 아이들은 안타까운 소리와 함께 “졌다.”는 표현을 하고 있더랍니다. 거미줄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옮겨가는 방법을 여태 모르고 있었나 봅니다.

다시 처음부터 실뜨기가 시작되었고, 큰아이가 거미줄을 잡았을 때 작은애 대신 얼른 아빠가 나섭니다.





“이건 말이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란다.”

“응차!” 소리를 내면서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실 구멍 사이로 넣어 훌러덩 뒤집었더니 아이들에게는 실뜨기를 하면서 처음 본 새로운 모양이 나와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아이들한테는 절망이었던 거미줄단계를 쉽게 넘겨서 그랬던던지 “와~”하는 감탄사가 튀어 나옵니다.

“아빠도 실뜨기 할 줄 알아요?”
“응? 아빠 어렸을 때는 놀잇감이 없어서 이런 것도 곧잘 하고 놀았어요. 외할아버지께는 고추달린 놈이 여자들이나 하는 장난을 한다며 야단도 많이 맞았지만.”

아! 정말 생각해 보니 마당에 널브러져 있던 돌멩이 몇 개만 주워와도 재밌는 놀이가 되어 추운 겨울을 이길 수 있었던 때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9남매의 장녀였던 어머니께서는 겨울만 되면 아버지의 일 때문에 우리 형제를 외가에 맡겼었고, 그 때마다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는 이모들과는 공기놀이도 하고, 삼촌들과는 썰매타기나 팽이치기를 하며 놀았었지요. 손재주가 많으셨던 외할아버지께서는 그런 것들을 모두 낫을 이용해 나무를 자르고, 가지는 쳐내시며, 못 몇개 뚝딱 박는 것으로써 훌륭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살포시 떠오르는 옛날 기억에 푹 빠져 있을 때 어머니께서는 정성들여 지으신 저녁밥을 어느새 식탁 위에 다 차려 놓으시고는 “더 어둡고 추어지기 전에 애들 델꼬 갈라믄 어여 먹고 서둘러라.” 하시며 채근을 하십니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나니 꼬깃한 오천 원 짜리 한 장을 큰애 손에 쥐어주며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집까지 그냥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하십니다. 이럴 때는 그저 할머니께서 손녀를 생각하는 마음만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받게끔 하는 것이 낫습니다. 괜히 거절이라도 하는 양이면 손이 민망한 어머니께서는 헛기침을 하시며 불편해 하시기 때문이지요.

집에 들어오자마자 양치와 세수를 하고 나온 큰애가 할머니가 주신 택시비 거스름돈을 달라고 합니다. 점퍼 주머니에서 기사님한테 받은 돈을 고스란히 꺼내 아이한테 건네면서 왜 달라고 하는지 궁금해 아이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아! 돼지저금통에 열심히 밥을 주는군요. 500원짜리, 100원짜리, 10원짜리와 50원짜리를 따로 넣으라고 준비해준 돼지저금통에 각각의 동전을 구분하며 넣는 모습을 보니 대견해 보입니다. 주머니를 뒤져 나오는 잔돈의 마지막 하나까지 모두 꺼내 아이한테 건넵니다. 더 많아진 잔돈에 신이 난 아이의 얼굴에는 벌써 부자라도 된 듯한 모습을 하며 부지런히 돼지저금통에 살을 찌워주고 있습니다.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은 어떻게 하나 지켜보았더니 분홍색 가방에서 손지갑을 하나 꺼내 거기에다 정성스럽게 끼워 넣더군요. 슬쩍 쳐다보니 아빠 지갑보다 더 볼록한 것이 제법 모아놓은 것 같습니다. 설날이나 추석에 받은 용돈은 전부 아이들 통장에 넣어주기 때문에 아이들이 지갑에 돈을 모으고 있다는 생각은 여지껏 해본 적도 없었는데 아마도 본가를 오가면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재미삼아 쥐어주시는 용돈을 나름대로 그렇게 모아놓았나 봅니다.

“야~ 우리 공주. 아빠보다 더 부잔데? 그 돈 모아서 뭐 할 거야?”
“예진이는 저보다 더 많아요. 그전 날에도 제 거 두 개나 달라고 막 그래서 제가 줬어요.”
“응? 그러니까 그렇게 모아서 뭐 할 건데요?”
“몰라요. 근데 아프리카 친구들한테 조금 줘도 괜찮은 거예요?”
“아프리카 친구들은 왜?”
“유치원에서 '세계의 친구들'을 배웠는데요. 배가 고파도 밥을 못먹는 친구들이 지금도 아주 많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속으로는 ‘그럼. 되고 말고. 그렇게 하려무나. 아빠, 엄마는 가진 게 별로 없어서 가끔 불편해 하기는 하지만 너희가 그렇게 꿈을 키우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게 그 무엇보다 아빠나 엄마한테는 값지고 소중한 거란다.’는 소리가 종소리처럼 맑게 들려옵니다.

아이들한테 연말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배우는 오늘입니다. 저 돼지저금통 삼형제의 배가 더 이상 부풀어 오르지 못할 정도로 꽉 차게 되는 날, 지금껏 지갑에 모아온 얼마간의 지폐와 함께 아이들 손으로 기부를 할 수 있게 해줘야겠습니다. 그 액수가 얼마면 또 어떻겠습니까? 금액에 적혀있는 숫자는 어른이 만들어 놓은 기준일 뿐 아이들에게는 백 원이나 천 원이나 그저 똑같은 마음일 텐데 말입니다. 그저 이런 생각을 해준 아이들한테 고마운 오늘입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