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21세기형 프로슈머 마케팅 전략
막강하게 진화하는 프로슈머
생산자와 소비자의 엄격한 구분이 사라지고 있다. 제품개발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자신의 지적 생산물을 인터넷에 기꺼이 올리며, 이러한 일을 직업으로 삼는 새로운 소비 계층이 등장했다. 이른바 21세기형 프로슈머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확산으로 소비자들의 입소문 효과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력이 커졌다. 앞으로는 이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마케팅 전략에서 더 중요해질 것!!
막강해진 디지털 프로슈머의 힘
아직도 기업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경영자다. 지금은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가 트렌드를 좌우하는 시대다. 40년 전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제3의 물결》에서 21세기에 프로슈머가 등장할 것이라고 했고, 그의 예견은 적중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엄격한 구분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 소비자는 단순히 만들어진 제품을 구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제품의 개발, 생산, 출시에 참여하며 심지어는 제품의 단종과 재출시까지도 결정하는 주체가 됐다. 입소문 잘못 났다가는 어렵게 쌓아올린 기업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고, 반대로 비싼 모델을 기용해 광고하지 않고도 브랜드를 홍보할 수 있다. 그 중심에 프로슈머가 있다.
프로슈머(prosumer)는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생산적 소비자’를 뜻한다. 프로슈머는 이미 오래전에 등장한 개념이지만, 세월만큼이나 프로슈머의 위상과 역할도 달라졌다. 소비자들이 더 똑똑해졌다는 의미를 담은 스마슈머(smart+consumer), 창의적인 소비자를 뜻하는 크리슈머(creative+consumer)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단순히 제품을 평가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정도에 그쳤다면, 디지털 시대의 프로슈머는 더 직접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기업에 전달한다. 획일적인 제품과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은 기업의 홈페이지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제품에 대한 목소리를 냄으로써 제품 개발과 판매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은 P2P(개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파일을 공유하는 것), 소셜 미디어와 1인 미디어의 등장이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기업을 연결하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많아지면서 기업은 소비자의 아이디어를 오픈 소스로 모을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기업은 자체 소비자 패널이나 체험단, 더 나아가 막강한 인지도와 팬층을 보유한 인플루언서 등과 협업해 소비자들의 의견을 모으고, 그러한 의견을 신제품에 반영하는 프로슈머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있다. 프로슈머를 잘 활용하면 제품 기획에서 생산, 판매, 유통에 이르는 각 단계에서 예상되는 실수를 줄일 수 있고, 이 과정에 참여한 소비자들이 제품에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되면서 기업과 일종의 파트너십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런 고객은 기업 입장에서 큰 자산이 된다.
고객이 연구원이자 인플루언서
고객의 의견을 기업 경영에 가장 잘 활용한 사례로, 창업 3년 만에 유니콘 기업의 반열에 오른 미국 화장품 기업 글로시에(Glossie)를 꼽을 수 있다.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기업가치가 12억 달러에 이르는 글로시에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뷰티 브랜드다. 유명 연예인을 광고모델로 내세우지 않고도 로레알과 에스티로더를 넘보는 회사로 성장한 글로시에는 출발부터가 남달랐다. 일반인들의 화장법이나 피부고민 등에 대한 인터뷰를 게재하면서 파워 블로거로 유명세를 탄 에밀리 와이즈(Emily Weiss)는 2014년에 온라인으로 4개 제품을 론칭하며 글로시에를 창업했다. 그는 유명 모델을 내세우는 기존의 뷰티 브랜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고객과 고객이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회사 성공의 열쇠”라고 밝힌 바 있는 에밀리 와이즈는 고객의 니즈를 파악한 뒤 제품을 개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고객 설문을 통해 다수가 찬성하는 제품만을 개발하는 것. 고객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 글로시에는 업무용 매신저와 고객후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슬랙(Slack)’이라는 업무용 툴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개인용 모바일 메신저를 업무용으로 최적화한 서비스다. 일종의 기업판 카카오톡이다. 글로시에는 고객들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채팅창을 마련하고, 이 커뮤니티에서 오가는 메시지를 모니터링해 제품개발에 반영한다. 시제품이 완성되고 나서도 고객들에게 구입의사를 물어 80%가 찬성해야만 제품으로 출시한다.
고객의 의견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글로시에의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제품 소개 페이지를 고객후기로 가득 채웠다. 고객 커뮤니케이션 부서에 가장 많은 인원을 배치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창업 후 5년간 출시한 제품이 40종이 채 되지 않지만, 글로시에는 밀레니얼 세대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무섭게 성장 중이다.
MIR마케팅혁신연구소의 이준호 소장은 “사용자 경험, 디자인 감각, 화장품 성분에 대한 의사결정력을 가진 ‘진화한 프로슈머’가 국내 시장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뷰티 플랫폼 커뮤니티에서 먼저 품질을 인정받은 후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 후기 마케팅을 통해 성장하는 작은 기업들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대표적인 사례로 피부혈액형 문화를 정착시키며 프로슈머 마케팅으로 이정표를 찍은 ㈜고운세상코스메틱의 뷰티 브랜드 ‘닥터지’를 꼽았다. 피부과 전문의인 안건영 대표의 브랜드 개발 스토리가 유튜브에 공개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닥터지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을 이용해 고객후기와 의견들을 적극 반영하는 등 고객과의 스킨십을 강화하며 연간 300만 개 이상 팔려나가는 달팽이크림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소기업으로 시작해 온오프라인의 전방위적인 유통 채널에서 입점 제안을 받으며 매출 1,000억 원에 육박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소장은 “대중스타 광고는 하지 않고 소셜 미디어의 힘만으로 마케팅을 전개해가는 기업이 늘고 있다”며 “2030세대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화장품 정보 플랫폼 ‘화해’라는 앱을 통해 이노베이터 같은 사용자들에게 성분의 우수성을 인정받은 후 인스타그램, 유튜브, 페이스북, 블로그를 통해 소셜 마케팅을 전개하는 것이 국내 뷰티산업의 전반적인 흐름이 됐다”고 설명했다.
1. 제품에 대한 상세설명보다 고객후기를 먼저 소개하는 글로시에 홈페이지. 글로시에는 고객들이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 직접 물은 후 제품을 만들고, 시제품 완성 후에도 고객의 80% 이상이 지지해야 제품으로 출시한다. 2. 대상청정원 홈페이지에서는 자사의 소비자 패널 그룹인 ‘청정원프렌즈’들을 대상으로 제품 개발과 개선 관련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있다. |
단종도 재출시도 고객의 손에 달렸다
식품 업계도 뷰티 업계 못지않게 프로슈머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분야다. 지난해 식품 업계에서는 프로슈머의 의견을 반영해 단종됐던 과거의 히트 제품을 재출시하는 바람이 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소비자들의 열성적인 지지에 힘을 얻어 단종 3년 만에 다시 출시된 오리온의 ‘치킨팝’,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지만 역으로 해외에서 제품을 맛본 국내 소비자들의 출시 요청으로 8년 만에 재출시된 농심의 ‘감자탕면’이 대표적인 사례다.롯데리아는 지난해 창립 40주년을 맞아 오징어버거를 재출시했는데, 출시 20일 만에 250만 개가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다. 오징어버거는 롯데리아가 과거에 출시된 버거류 10종을 대상으로 진행한 소비자 인기투표에서 약 66만8,000표를 얻으며 1위를 차지한 제품이다.
제품을 단종시키는 것도, 그것을 다시 살리는 것도 고객이라는 점에서 기업은 프로슈머 마케팅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불닭볶음면’이 히트한 배경에도 프로슈머의 활약이 숨어 있다. 삼양식품은 자사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다양한 고객 문의와 요구사항을 접수받고 있으며, 여기서 취합된 내용을 제품개발에 반영하고 있다. 한국야쿠르트의 ‘잇츠온 밀키트’도 소비자 패널 평가를 통해 테스트를 거친 후 출시된 제품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대상청정원은 자체 크리에이티브 어드바이저를 운영해 소비자들의 의견을 적극 청취하고 있다. 6개월마다 15명의 소비자를 선발해 매달 제품 MD들이 직접 이들을 만나며 맛은 물론이고 제품의 콘셉트, 가격, 네이밍 등의 의견까지 어드바이저들과 공유한다.
소비자 공감 얻는 '소통'이 핵심
프로슈머가 기업에게 기회이기만 할까? 그렇지는 않다. 그들의 강력한 전문지식과 기술은 오히려 기업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기업이 공개한 성분을 일일이 분석해 시시비비를 가려내기도 하고, 자신들과 생각이 다를 경우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프로슈머의 의견이 언제나 옳은 것만은 아니다. 생산이나 비용 요소를 고려하기보다 소비 본연의 입장에 치우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장 전체를 바라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프로슈머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충성고객을 돈으로 살 수는 없다. 앞서 예로 든 글로시에의 블로그와 SNS에는 하루에도 수천 건의 글이 올라오는데, 이에 대한 답변이 올라오는 데 채 5분이 걸리지 않는다.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악평에도 정성스럽게 답변을 단다. 글로시에는 이를 위해 직원 중 가장 많은 인원을 고객 커뮤니케이션 부서에 배치했다. 이런 과정에서 형성된 기업과 고객의 ‘공감’이 충성고객을 만드는 것이다.
프로슈머를 활용한 마케팅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저비용으로 잠재적인 소비자까지 끌어들여 자신의 팬으로 만들 수 있는 수단이 됐다. TV광고의 위상이 예전에 비해 낮아진 상황에서 마케팅과 홍보에 막대한 자금을 들일 수 없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프로슈머 육성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실제로 트위터가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8%는 인플루언서가 추천한 제품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또한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밀레니엄 세대 중 약 85%가 전통적인 광고에 대한 믿음을 잃고 있으며, 갈수록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를 더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얘기다. 기업은 고객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고객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료출처 -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발행하는 경영·기술 전문지 '기업나라' 임숙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