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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의 말로는 절대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믿음’이라거나, ‘헌신’, ‘증오’라는 감정들을 보면 하나의 어떤 느낌으로만 표현하기는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느끼게 되니까 말입니다. 이러한 감정에 ‘사랑’이라는 감정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명제할 수 없다는 것과 함께 여러 마디로 표현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복잡계에 속해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그것을 느끼고 있고, 누리고 있으며, 나누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마음과 헌신적인 행동을 선물하기도 하지만 과정이나 결과에 있어서는 깊고 깊은 아픔을 강제하기도 합니다. 표현이 다소 어색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마치 달콤한 초콜릿이 가져다주는 강렬한 유혹을 닮아 보입니다.

분명히 사랑을 하는 순간에는 누구나 많은 설렘과 행복을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또한 기다림의 묘미와 튕김의 미학을 적절히 배분함으로써 자신이 가지고 있는 존재가치를 끊임없이 확인하며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희열까지 부르짖을 수도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 흥분과 떨림을 즐길 수 있는 짧으나 짧은 최고점의 시간을 보내면서 뭔지 모를 위기감을 느끼게 되고, 그러한 상황을 접하게 되면서 스스로는 불안과 히스테리에 시달리게 되지요.



감정이라는 것은 물 흐르듯 고요하게도 지나가지만 걷잡을 수조차 없는 토네이도의 격랑을 담기도 합니다. 누가 강요하거나 유도하지도 않았건만 막연하게 느끼는 불안감으로 인해 쉽게 이별을 예감하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데 급급하게 됩니다.


아직도 난 널 사랑하는데 넌 왜 내게 그러는 거야?

난 사랑하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배려가 없는 상태에서 항상 자신에게 시계바늘을 맞춰주기만 바라는 생활을 지속한다면 언제가 됐건 이런 시한폭탄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연인의 헤어짐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연인이 그렇게 이별을 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빌미를 제공한 것은 상대방일수도 있지만 언제나 내가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가장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은 바로 본인은 하나 잘못한 것이 없는데 상대방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변심을 했다며 원망을 하는 거죠. 그 동안 본인 스스로가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한 것들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원망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가만히 살펴보면 실상은 본인 스스로가 헤어지는 이유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나눴던 사랑을 접으려 할 때는 당연히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여러 이유가 있을 터인데 본인은 그것을 인정하거나 이해하기 싫기 때문일 겁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행복할 때, 모든 세상이 내 것처럼 보일 때 더욱 아끼고 조심하며 더 크게 키워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몹쓸 철학자가 되는 순간이 있지요. '저 사람이 나를 정말 사랑하고 있기는 하는 건가?'라는 의심이 들면서 쓸데없는 시험을 하게 되는 것. 그것도 한두 번 가볍게 하면 귀여운 행동에 대한 에피소드로 끝낼 수 있었을 것을 그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연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되는 것. 왜 고속도로에서 잘 나가고 있는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걱정하며 급브레이크를 밟아 사고를 유발시키는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번쯤 귀엽게 토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눈물 가득한 얼굴로 감성에 호소하는 것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다만, 그것도 무기라면 무기인데 수시로 꺼내들면서 매번 예쁘게만 봐달라고 한다면 어느 순간부터 그 행위는 애교의 수준을 넘어서는 협박과 족쇄가 될 수 있음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흥! 원래 저런 사람이니까 내버려두면 다시 돌아오겠지."

헉! 오해하지 마세요. 사랑 때문에 자존심을 다치게 되면 절대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항간에 떠도는 연애지침서를 참고하여 마음에 없는 튕김을 자주 하지 마십시오. 원래부터 저런 사람은 없습니다. 복싱에서도 잽을 던지다가 카운트펀치를 날리는 것처럼, 한두 번 이별의 뉘앙스를 던지고 있다면 긴장해야 되는 겁니다. 재미로 헤어짐을 논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만에 하나 사랑하고 있는 연인의 입에서 이별이라는 단어가 자꾸 거론되고 있다면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 분명할 겁니다. 듣기 좋은 소리도 여러번 들으면 짜증이 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서로의 감정에 좋지 않은 이별을 입에 담는다는 것은 서로가 지켜나갈 사랑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사람일 터이니 먼저 끝장을 종용하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이별에 대한 느낌은 알게 모르게 세워진 감정의 안테나로 본인이 누구보다 먼저 눈치를 챌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헤어짐의 시기가 어느 정도 감지될 때쯤이면 세상에 있는 모든 이별노래가 어느새 내 노래가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름에는 강렬한 비트나 발랄한 댄스곡이 대세를 이루다가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서는 시기가 되면 발라드가 상종가를 치는 이유 역시 곡 자체가 좋은 경우도 있겠지만 그 가사에 덧입혀져 있는 본인의 이야기에 스스로가 몰입하기 때문일 겁니다. 가을과 겨울은 혼자라는 느낌이 다른 계절에 비해 더 강하게 다가오기 때문이겠지요.

하여......


지금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에 대한 자존심 때문에라도 연인에 대한 의심을 절대로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또한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해 오지랖 떨며 시험할 생각도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어차피 사랑만 하면서 살아가기에도 짧은 인생 아니겠습니까? 내가 조금 덜 받고, 거기에다 내가 조금 더 주고 있다 하더라도 억울해 할 필요는 전혀 없을 겁니다. 사랑은 내가 하는 그 자체로 행복을 선물받기 때문이니까요.

누구의 가슴 속에나 삼류소설 한편은 살아 숨쉬기 마련입니다. 허나 본인에게는 목숨을 버릴 만큼 아프고 힘든 사랑이었겠지만 그런 상처를 크고 작고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 누구나 겪으면서 아파했던, 밤마다 베개에 눈물을 쏟아 부었던 그 사랑을 지금이라도 살려낼 수 있는 사랑의 불씨가 남아있다면 애써 꺼트리지 말고 소중하게 지키고 아끼도록 해야겠습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