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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는 온수 쪽 어디에선가 누수가 되는지 수시로 물보충을 해달라며 삑삑대고, 아랫층에서는 물이 샌다고 하소연을 해대는 바람에 업자를 불렀더니 화장실 방수에 문제가 있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인지라 지난 수요일, 그 추운 날에 화장실 전체를 뜯고 방수공사를 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 돌보는 일은 자연스럽게 할머니 몫이 되었기에 죄송한 마음만 가득한 며칠이었지요. 그리고 다음날 하루를 꼬박 타일이 마를 시간으로 비워두었고, 금요일에는 변기와 세면대를 얹었습니다. 수요일부터 낮에는 집안에 사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잘못 될까 싶어 보일러는 최대한으로 온도를 올려 놓고 가동을 시켰습니다. 타일이라도 빨리 말라야 되지 않겠나 싶은 마음도 들었고요. 토요일 오전부터 샤워와 변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는 했지만 혹시나 싶어 급한 용무만 보고 샤워기는 오늘 새벽까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화장실 방수공사를 하니 가장 불편한 것은 싱크대에서 머리를 감는 것도, 샤워를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더랍니다. 그게 뭘까요? 맞습니다. 바로 볼일을 보지 못하는 고통이지요. 특히 잠자기 전에는 항상 조금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극장까지 일부러 가서 특별히 마렵지 않아도 억지로 볼일을 보고 와야 했습니다. 아마 온도계로도, 체감적으로도 이제껏 살아온 날 중 가장 추었던 밤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가끔 새벽녘에 눈이라도 떠지게 되면 얼른 아무 생각없이 이불을 다시 뒤집어 쓰고 잠을 자려 했으니...... 그야말로 죽음의 공포와도 맞먹는 시간이었던 같습니다.

오늘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욕조와 새로 얹은 세면대, 그리고 좌변기는 물론 벽과 바닥에 새로 붙인 타일까지 깨끗이 닦아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 스멀스멀 기어들어 오더군요.

"어? 이럴 수가....." 이번에는 배수구에 문제가 있는지 물이 잘 빠지지 않는 겁니다.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배수가 되는 것을 확인했기에 아내의 샤워를 말리지 않았는데 샤워를 마친 아내가 물기가 가득한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방안으로 들어서더니 물이 빠지지 않는다고 호들갑을 떱니다. 방수공사를 맡았던 분과 통화를 했지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라는 말씀과 함께 시외로 나가 있다고 이따 저녁 여섯시 경에 보러 오겠다고 합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 며칠 동안 신경쓰고 고생한 탓에 몸무게가 5kg은 줄어든 것 같은 느낌입니다. 어쨌든 더 이상 고생을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저녁에 업자분께서 오시게 되면 더 큰 공사 없이 아주 손쉽게 처리되기만 바랄 뿐입니다.

짧은 며칠 동안이지만 화장실 사용을 못하고 보니 어렸을 적 외가에서 살던 때가 생각납니다. 방 앞에는 댓돌이 있었고, 저 앞쪽의 마당에는 몇 가지의 채소를 기르는 텃밭도 있었지요. 그 텃밭 옆으로는 세칸 짜리 목조로 지은 낡은 헛간 같은 것이 있었는데 왼쪽 칸은 누렁이 황소와 검은 염소가 매어져 있었고, 오른쪽 칸에는 땔감과 여물이 쌓여져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칸이 바로 통나무 두개만으로 발판을 만들어 사용했던 푸세식 변소였고 말입니다. 특히나 추운 겨울에는 군용 손전등을 들고 가는 것이 너무나 귀찮았던 그 시절의 추억.

그래도 밤 늦게라도 눈치를 보지 않고 화장실 사용이 가능했던 영화관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 고마운 마음을 영화관람으로 대신하겠다는 글로 전해드리오니 혹시라도 영화관 관계자분께서 이 글을 읽으신다면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정겨운 이웃님들께서도 저처럼 추운날 고생하지 마시고, 보일러나 수도나 전기나 뭐가 되었건 간에 조금이라도 의심나는 곳이 있다면 겨울이 되기 전에 미리미리 점검해 보시는 현명함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