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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행해지는 약속과 신념과의 관계, 그리고 보편타당한 가치 기준과 처한 상황의 충돌, 쉽게 버려지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방황을 잉태하는 인생.


약속의 무게를 생각하기 위해 꺼내든 화두이건만 그 답을 풀어가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기준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은 아닌지, 아직도 삶에 비축된 욕심의 크기를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지 막혀 있는 감정의 흐름을 시원스레 뚫을 수가 없는 밤입니다.

체념과 포기로 흘려보낼 수 없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지만 그 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제방이나 둑을 어느 장소에 어떤 방향으로 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 참으로 스스로를 어렵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마음의 가운데를 지켜야 한다는 것에 대한 버거움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쪽으로, 혹은 저쪽으로 흔들리지 않고 가운데(中)를 지킬 수 있는 마음(心)을 한마디로 충(忠)이라 할 수는 있겠지만 허상과도 같이 실체가 보이지 않는 심상의 그늘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수련이 덜 된 불탄으로서는 너무나 무겁기만 합니다.





인플루언스에서 말하는 '약속'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지난 3월 9일, 불탄은 디지털 영화 '인플루언스'의 첫번째 에피소드 '두번째 시작'을 보고 나름대로 느꼈던 약속의 무게감에 대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관련 포스트 1. : 인플루언스 EP1, 약속 vs 신념 vs 가치관에 대하여
관련 포스트 2. : 이병헌의 윈저 광고는 한편의 영화였다


이후 가끔씩 묵직하게 느끼고 있던 '큰 약속'의 모호함을 오늘은 에피소드 6 '약속을 그리다'를 관람하면서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 형질 중에 우성인자, 또는 열성인자를 뽑아서 그대로 복제할 수 있는 때가 조만간에 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유전학적으로 어느 정도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접하고 있으니까요. 허나 신체적 형질이 아닌 정신적 세계에까지 확대된다는 것에는 다소 회의적인 생각을 갖게 합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매일같이 선과 악의 기준 잣대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거나 자발적인 상태에서의 취사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마음 속에서 욕망의 그림자를 먹고사는 악마와 선한 기운을 받아들여 커가고 있는 천사가 수시로 싸움을 하고 있는 거지요.

인플루언스 에피소드 6 '약속을 그리다' 편에서의 W(이병헌)은 누구의 마음 속에나 있는 그런 선과 악의 극명한 모습을 하일라이트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념과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선택받은 인물들을 DJC로 안내하는 미스터리 가이더 W. 그리고 그런 W를 필사적으로 제거하려는 인물은 그 누구보다 W에 대해 잘 알고 있는 W의 또다른 형질이 만들어낸 자. W 자신이면서도 W와 180도 다른 빛과 그림자의 관계.


인플루언스 에피소드 6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뜨끔한 죄책감을 갖게 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보여주는 모습이라는 것이 바로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실상은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 속의 그늘이 표출되는 상황이니까 말입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날리고 거기에다가 23억원의 빚더미에 앉게 된 대형 경매회사의 오너 최동훈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고층빌딩에서의 투신이었고, 빌딩에서 투신하는 순간 미스터리 가이더 W는 그의 목숨을 건져주며 DJC로 초대를 하게 되지요. 최동훈은 23억의 빚을 탕감해 주겠다는 사채업자의 유혹에 W를 위험에 빠뜨리지만 결국은 그를 탈출시켜줍니다.


두려워 말고 돌아서라!





최동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DJC의 멤버로서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유언을 듣게 됩니다. 경매장에서 W가 10억원이란 금액에 낙찰받았던 '진주'라는 작품을 찢어내고서 건네주는 그림 한점과 함께 말입니다. 자신이 어렸을 적에 아버지를 캔버스에 담은 그림이었죠.

그 순간... "짤랑~"하는 소리가 천둥소리보다 크게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윈저XR을 온더락스로 따라놓은 잔에서 전달되어온 울림이었습니다. 침묵에서부터의 깨어남이요, 미욱한 생각계에서 현실계로 돌아오는 소리입니다. 잠자고 있던 열정을 일으키는 소리이자 잊고 있던 아버지의 사랑이 전해오는 떨림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이미지만 보였을 뿐이었지만 불탄의 눈에는 귀를 대신한 뭔가가 그렇게 크게 전해졌습니다.

과연 최동훈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이미 죽음 이후의 일이었을 텐데 DJC의 맴버였던 최동훈의 아버지는 어떻게 오늘의 일을 미리 알고 그와 같은 유언을 남겼을까요? 그리고 오늘이라는 시간에 이르러 미스터리 가이더 W는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최동훈에게 전달할 수 있었을까요?





정녕 진실되고 절실한 약속이라는 것은 시간을 초월하는 걸까요? 두딸의 아빠와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그리고 건강을 잃지 않아 그 무엇보다 고맙고 감사한 부모님에게는 하나의 아들로서 불탄은 어떤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는지 부끄럽기만 합니다. 그만큼 약속의 영향력, 그 크기와 무게감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약속에 있어서 크고 작은 저울의 눈금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치만 우선순위는 있을 수 있겠지요. 또한 가슴 한 가운데 세워놓은 속박의 통제에 의해서 그 누구보다 본인 스스로가 알고 있을 겁니다.

오늘, 인플루언스 에피스드 6을 통해 다시 한 번 갖게 된 생각이라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금까지 수차례 행해왔던 비겁한 타협과 포기를 이제는 싸그리 그늘과 그림자의 봉투에 채워놓고 시원스레 버리고 싶다는 겁니다.

사랑하면서 살아가기에도 짧은 인생이라고 합니다. 아끼고 위해주면서 버텨나가기에도 부족한 것이 인생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더욱 크고 넓은 마음으로 오늘을 채워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봅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