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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닥타닥.

졸음을 참아가며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지금이라는 시간. 인터넷을 활용하여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또 입소문을 통해 홍보전략을 세우는 것이 어느덧 일상생활에서까지 컴퓨터로 하는 일의 대부분이 되어버렸다.

하기사 요즘 들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친분을 쌓아가는 온라인 상의 이웃들과 안부를 묻고, 서로 격려도 하며, 고민도 함께 나누는 재미가 제법 쏠쏠해졌다. 어찌보면 내왕을 하지 않는 먼 친척보다도 나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고, 실제로도 친지나 오프라인의 이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아내가 찍어둔 아이들의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 일기를 통해 내 생활을 여과없이 드러내기도 하며, 또 댓글과 덧글, 안부게시판이나 메모장에 생활의 많은 부분을 올리고 있으니...

두어 시간 전 쯤에는 아내가 투명한 접시에 사과를 깎아서 뜨거운 커피와 함께 내어준 다음 피곤했던지 딸깍거리며 늦은 시간동안 자판을 두드리는 불탄의 컴퓨터방에서 그냥 잠이 들었다. 잠시 후에는 큰 딸아이가 잠에 취한 눈을 절반도 뜨지 못한 채 투정하듯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내면서 엄마 옆에 모로 눕더니 조용해졌다. 큰 안방도 비워두고, 그나마 시원하게 자라고 거실에 자리를 펴놓았는데 아마도 잠결에 엄마가 보이지 않으니 잠시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엄마를 찾았을게다.

슬슬 걱정이 밀려온다. 엄마와 큰 딸아이가 이 방으로 왔다면 작은 딸아이 혼자서 거실에 있을 것이 아닌가?

화장실을 가면서 흘낏 시선을 던지니 더위에 잠옷을 가슴까지 올린 채 엎드려 자고있다. 이마에 흩어진 머리칼을 쓸어 올려주려니 땀으로 인해 끈적거림이 심하다. 한창 더울 때라고는 하지만 내게 있어서는 가만히 누워있으면 홑이불이라도 찾게 되는 서늘함이 느껴지는데 아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은가보다.


아빠의 인기척을 느껴서였을까?

작은 딸아이가 기어이 잠에서 깨어나더니 역시나 아빠의 기대감을 산산히 부셔버리면서까지 엄마만 찾는다. '쉬야~'부터 하고 자자는 아빠의 말에 동의를 하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마친 아이가 팬티교체를 선언하고 나섰다. 영 그런 이유를 모르는 아빠로서는 그냥 "왜 자다가 쉬야라도 했어?"라는 물음을 입으로는 못꺼낼 것 같으니까 눈으로만 물을 수밖에......

결론은 팬티가 축축하단다. '땀 때문이겠지.'하고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쩔 도리가 없이 그냥 아이들 방에 들어가 예쁜 리본이 앙증맞게 매달려 있는 핑크색 팬트를 꺼낼 수밖에 없다.

입혀진 팬티가 마음에 들었는지 작은딸은 엄마와 언니 사이에 잠결로 만들어 놓은 공간을 비짓고 들어가면서 한마디 한다.

"아빠! 사랑해요. 일찍 주무세요."

껍질을 까면 오손도손 웅크리고 있는 두 세알의 땅콩이 신기해서 쳐다보았던 어린시절이 있었다. 넓은 안방도, 아이들 방도, 그리고 확 트인 거실까지도 다 버리고 좁디 좁은 내 컴퓨터 방에 온 식구가 이렇게 모여 있으니 문득 땅콩껍질 속의 알맹이 같은 느낌이 든다.

몇해 전 일기를 계속 썼을 때 제목을 붙여보았던 땅콩껍질 속의 사랑, 오늘은 그 의미가 사뭇 남다르게 다가온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