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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오랜만에 걸려온 한통의 전화. 사실 몇번이나 걸려온 번호였다는 건 불탄도 알고 있었다.
다만 모르는 번호라는 이유로 스팸으로 간주하고 받질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왠일로 그냥 받아보고 싶었다. 해서 휴대폰에 있는 녹색 센드 버튼을 힘차게 눌러보았다.
잡음과 함께 엄청 시끄럽게 들리는 일본말 사이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휴대폰을 통해 귀를 간지럽혔다.



그래! 그렇게 그분은 여전히 살아있었고, 나름대로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나보다.

그러고보니 그분과의 전화통화를 마지막으로 했던 때가 거의 2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으니
참 서로가 민망할 정도로 격조했던 것만큼은 확실했다.

서로가 반가운 인사와 안부를 시작으로 통화를 지속하다보니 그분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사업에 관한 얘기가 흘러나왔다.

"본부장님께서 도와주셔야 되겠어요."
"네? 무슨...... 시간도 너무 지났고, 지금은 유능한 사람이 도처에 깔려있을 텐데요."

대화를 하는 중간에 낯익은 백화점·마트에 관한 상호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순간 심장이 조금씩 반응을 해오는 걸 불탄은 여실히 느낄 수 있었고.

최근 1년 사이, 이 유통회사는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고 했다.

글로벌 대형마트체인인 인도네시아의 마크로를 인수한 데 이어
작년 가을에는 중국의 토종 대형마트인 '타임스'까지 꿀꺽했을 정도로.

게다가 지상 65층 높이의 랜드마크 빌딩을 베트남 하노이에다가 멋지게 짓고는 화려하게 기공식도 가졌다고 하니.......

그런 이 유통기업의 글로벌한 움직임은 불탄에게 또다시 심한 가슴앓이를 하게 만든다.

뭐, 그렇다고 이 기업이 직접적으로 이득을 주거나 해를 끼쳤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지금이라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불탄의 입장에서는 그 자체가 유혹이 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흔들리게 된다는 것이고.

어쩌면 또다시 스스로 귀가 얇기 때문에 받아들여할 마음으로부터의 형벌이 시작된 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잠시 통화를 하면서 멍해 있는 불탄에게 그분은 뜬금없이 함께 중국으로 가자고 한다.
지금껏 나눴던 화제의 중심에 있는 이 기업과의 연관된 사업 중에서
중국 전역에 있는 80여개의 마트와 관련이 있다고 하면서.....


"이달 말까지 어떻게든 정리하세요."
"네?"
"본부장님께는 내가 삼고초려를 하면서까지 초빙을 해야 되겠지만 나도 시간이 많지 않으니 여기서 용서를 구하리다."
"......"
"내 사정 좀 봐줘요."
"저야...... 뭐..... 그래도......"

그러면서도 스카웃 명목으로 제법 큰 몫돈을 선불형식으로 지불하겠다는 의사까지 전해받게 되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계좌를 통해 입금받게 될 금액이 얼마나 될런지는 전화를 끊고 난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그냥 D-Day가 5월 초쯤 될 것 같으니 지금으로서는 일단 기다려보는 수밖에.
 
김치국부터 마시는 형국이 되는 건 아닐까?
두근대는 가슴이 쉽게 진정이 되지 않는 건 당연한 거겠지.


어떻게 될지 확정을 짓지도 못한 상태인데도 불탄은 지독하게도 바보스러운 걱정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어떻게 마무리 해야 할지', 또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건지'에 대해서......

주말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불탄의 머릿속에는 세찬 태풍이 휘몰아 치고 있다.
그것도 여지껏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크기의 토네이도급 태풍이 말이다.

어쨌든 지금이란 시간은 불탄에게 그 어느 때보다 위기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항상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쌍으로 널뛰기 마련이고, 오늘은 좋은 일을 절실하게 바라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은, 그게 힘들다면 적어도 가까운 미래의 어느 시간까지만이라도 행운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바라는 걸 간절히 염원하면 이뤄진다고 했으니, 오늘부터는 소망의 언어를 입에 가득 물고 다녀야겠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