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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자들만이 소녀의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함께 아이를 낳아 키우며 가정의 행복을 위해 어깨에 인생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머리숱도 적어지고 허리띠의 칸 수가 늘어가는 남자에게도 그에 못지않은 감성은 자리하고 있다.

어쩌면 화통해 보이기까지 하는 남자일수록 잊혀져 가는 추억의 자락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거다. 그 여리디여린 심성은 가끔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보이지 않는 칼이 되어 자해(自害)를 유도하기도 한다.

특히나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서늘하게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하나씩 떨어지는 낙엽이 속삭이는 계절에는 더 말해 무엇하랴. 내 살 곳의 따뜻함이 더해질수록 감정의 위태한 줄타기 유혹은 더 커져만 가는 것을.

신(神)은 두 가지를 모두 갖게 하지는 않는가 보다. 하나를 얻으려 하면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내 놓아야 하는 것이 살아가는 이치이거늘 어이 모두 가지려는 허망한 욕심으로 스스로를 상(傷)케 하는가. 그럼에도 하나를 버려야하는 상황 자체를 부정하며 양 손에 나눠진 것의 저울질조차 하지 않는 것은 미약하게 살아있는 청춘의 열꽃 때문일지도.





‘시원아, 나 이슬이. 오랜만이야.’ 시간을 보려 집어들은 남자의 휴대폰에는 그렇게 수신확인을 하지 않은 문자 하나가 찍혀 있었다. 결혼 후 10년을 넘게 함께 살아오면서도 무척이나 생소하게 느껴졌을 그 이름. 아마도 연애시절부터 오빠라는 호칭만 사용해 왔기 때문에 소설 속이나 드라마 속에서나 어쩌다 들어봤음직한 그 이름을 새삼스레 문자를 통해 보게 되었다고 여자는 생각했겠지. 아니다. '시부모가 가끔은 애비라는 호칭 대신에 이름을 부르기도 하셨으니 꼭 그렇지만은 않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어쩌면 남자의 휴대폰 속에 들어있지만 이미 기억 저편으로 밀려난 친구라는 그 여자에 대해서도 잠시 떠올려 보았겠지.

그렇게 여자가 내미는 휴대폰을 받아 든 문자 속 이름을 가진 남자는 연애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어색한 몇 개월의 짧은 만남을 문자 속 이름을 가진 여자와 가졌었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가끔-1년에 한번이나 두 번 정도나 될까?-안부를 묻는 통화로만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세월 동안 끊어질 듯 이어오고 있으니......

그 남자, 그 여자가 가지고 있을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 의미까지는 모르겠다. 문자 속의 남자에게는 아마도 문자 속의 그 여자라는 존재가 벼락처럼 학력고사를 준비하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여전히 가슴에 남길 수 있는 연결고리로서의 역할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고, 어른이 아니었음에도 음악다방 한쪽 구석자리에 오도카니 앉아 담배를 손에 끼운 채 겉멋이 든 글을 짓던 시절의 회고용 매개체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 시절, 남자는 그랬다. 낮 동안에는 누가 옆에서 큰소리로 불러야 고개를 돌려 수학공식으로 가득 차있는 눈동자로 그를 부른 이에게 시선을 보내고, 버터내음 가득한 혀를 굴려 그에게 답을 원하는 이에게 소리를 전하다가도 밤 시간에는 어김없이 대입학원이 밀집해 있는 학원가로 기어 들어가 팝을 듣고, DJ에게 심금을 울리는 글을 전하고, 습작노트에 빼곡하게 시어(詩語)와 대사(臺詞)를 짓고, 지은 글이 마음에 차지 않을 때면 시장 안의 단골 대포집에서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던......

한번은 소식이 끊어진지 2년은 더 지났고 3년은 아직 안되었을 즈음에 남자는 송탄 어딘가를 발송지로 하는 크리스마스카드를 받았다. 겉봉투에 찍힌 우체국 소인 때문이었는지 확실한 주소지라고 믿었던 남자는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볼 요량으로 시험 때도 보지 않았던 사회과부도를 꺼내 위치를 가늠해 보려 했지만 워낙에 작은 도면으로는 그게 여의치가 않았다. 곧바로 남자는 자기가 사는 연립주택 바로 옆 동에서 택시를 업으로 하시는 분을 찾아가 기사들이 비치해 놓은 지도를 구해보기도 했다. 아마 그때 익혔던 송탄의 지리는 그 이후 단 한 번도 써먹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며칠 후 남자는 근하신년이란 활자와 함께 순백의 학이 그려진 연하장으로 답 문장을 써서 보냈지만 아마도 반송이 되었던 것 같다는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남자가 휴대폰 문자에 찍혀있는 번호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러나 액정을 통해 보이는 숫자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도대체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휴대폰 번호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인지, 아니면 이제 한 번은 통화를 할 시점이 되었다는 것인지 전혀 분간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버리지 못해 보관하고 있는 색깔마저 바래져버린 일기장 속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이슬이라는 이름과 11개의 휴대폰 번호를 보는 눈에는 흐릿한 영상이 비쳐진다. 아마도 회한이겠지. 아니, 추억을 놓아주려는 의미일지도 몰라. 어쩌면 그 영상 속으로 투영되어지는 젊었을 적 모습을 남자는 잠시 음미하고 싶은 건지도......

'또각 또각...... 또가.....ㄱ......' 문자를 보낸 이슬이의 작은 손놀림으로 인해 남자의 여린 심성은 또 한 번 추억의 강에 배를 띄우고는 별다른 의미도 없는 글을 지으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103개의 자판만 두드리고 있다.

PS.   본 포스트는 2009년 9월 29일, 알라딘과 네이버블로그에 송고한 글입니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