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넷의 엘레지[01] 이별노래
불탄의 開接禮/마흔 넷의 엘레지 : 2010. 8. 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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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웃음이 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스치듯 짧은 시간동안 반짝거렸다. 어깨에 내려 앉은 눈송이가 층을 이루고 있지만 여전히 손을 움직여 털어내지 않는 것이 그게 전혀 불편하다거나 신경쓰이지 않아 보인다. 아니, 어쩌면 그런 느낌을 조금이나마 즐기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지. 이름을 물어오는 낯선 남자에게 짧게 이름 두자만 내뱉더니 뭔가를 읊조리기나 하듯 자그마한 입술만 연신 달싹거린다.
가만히 들어보니 너무나 애달픈 가슴앓이를 경험했을 법한 시인의 글에다 그보다 더 절실한 헤어짐을 경험했을 법한 가수가 곡을 갖다붙인 이별 노래다. 곡을 들으면 가슴이 아프고, 노랫말을 떠올리면 탄식이 흐르는 그런 노래다. 어제도 노량진 음악다방에서 누군가의 신청곡으로 들어봤던 눈물내음이 가득한 슬픈 노래다. 그녀의 입술을 통해 들릴 듯 말듯 전해오는 묘한 울림 때문이었는지 짧게 이름 두자만 전해들은 낯선 남자도 그녀의 보폭을 따라 말없이 따라서 걷고만 있다. 구반포에서부터 시작한 나란한 걸음은 동작동 국립묘지를 지나 흑석동 비계에 이르도록 깨뜨리면 안될 것 같은 침묵만을 이어가고 있다.
저 멀리 가로등 불빛에도 드러나지 않는 '탑공원'이 보일 때 쯤 그녀의 걸음이 멈춰섰다. 낯선 남자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에는 '어? 아직도 가지 않고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하는 질문을 담고 있다. 그 눈빛이 부담되었을까? 낯선 남자는 서둘러 가방에서 볼펜과 스프링 연습장을 꺼내더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녀에게 내밀 뿐이었다. 뻔한 말이 흘러나와야 할 상황이었겠지만 귀밑까지 빨개진 낯선 남자의 얼굴만 보아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그녀는 잠시 숨을 길게 내쉬더니 숫자 세개와 네개가 조합되어 만들어진 전화번호를 귀찮은 듯 써 주었다.
'씨익~' 웃는 낯선 남자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내비쳤다. 그리고는 설마 몇날 며칠이 지난다고 해도 잊힐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었던지 한시간 전 쯤 그녀로부터 들었던 이름을 직접 전화번호 밑에 써 넣다가 뭐가 부족했는지 볼펜으로 머리만 긁적이고 있다. 처음 짙은 어둠 속에서 잠시 보였던 그 웃음을 살짝 보이면서 그녀의 입술은 다시 한번 달싹거렸다. 어렵게 알아낸 이름 두 자 앞에 또 하나의 성이 쓰여지니 그제서야 온전한 이름이 완성되었고, 낯선 남자는 그제서야 비로소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전화해도 돼?"
'풉' 하는 짧은 웃음을 흘렸을 것 같은 그녀의 얼굴이 전보다 훨씬 커다란 웃음을 담고 눈으로 들어왔다. 순간 낯선 남자는 짙은 어둠을 겨우 밝히고 있던 가로등 밑에서 처음으로 그녀의 제대로된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짧은 감탄사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잘 가'라는 인사를 하며 돌아서려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돌아세운 낯선 남자가 열기 오른 얼굴을 하며 낮게 말을 이어갔다.
"이별노래, 나도 좋아해. 그치만 앞으로는 듣지 않을 거야."
"......?"
"그게 말야. 이별을 담고 있는 노래만 좋아하면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된대. 그 이전까지는 상관없었지만 이제부터는 아니야. 나 헤어지는 것 따위는 알고 싶지 않거든. 그냥...... 그냥, 그렇다고."
"그래? 넌 그렇게 해. 난 계속 좋아할 거야. 왜냐면 난 이별노래가 젤로 좋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거니까."
단호하게 말을 끊으며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낯선 남자는 이 새로운 만남이 그리 길게 가지 않을 거란 예감을 떠올렸다. 불길한 예감은 비껴가지 않더라는 걸 알고 있는 낯선 남자의 불안감을 비웃기라도 하듯 밖으로 빠져 나온 레코드 가게 스피커에선 언제부터였는지 이동원의 이별노래가 입김보다 더 시리도록 흘러나오고 있다.
가만히 들어보니 너무나 애달픈 가슴앓이를 경험했을 법한 시인의 글에다 그보다 더 절실한 헤어짐을 경험했을 법한 가수가 곡을 갖다붙인 이별 노래다. 곡을 들으면 가슴이 아프고, 노랫말을 떠올리면 탄식이 흐르는 그런 노래다. 어제도 노량진 음악다방에서 누군가의 신청곡으로 들어봤던 눈물내음이 가득한 슬픈 노래다. 그녀의 입술을 통해 들릴 듯 말듯 전해오는 묘한 울림 때문이었는지 짧게 이름 두자만 전해들은 낯선 남자도 그녀의 보폭을 따라 말없이 따라서 걷고만 있다. 구반포에서부터 시작한 나란한 걸음은 동작동 국립묘지를 지나 흑석동 비계에 이르도록 깨뜨리면 안될 것 같은 침묵만을 이어가고 있다.
저 멀리 가로등 불빛에도 드러나지 않는 '탑공원'이 보일 때 쯤 그녀의 걸음이 멈춰섰다. 낯선 남자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에는 '어? 아직도 가지 않고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하는 질문을 담고 있다. 그 눈빛이 부담되었을까? 낯선 남자는 서둘러 가방에서 볼펜과 스프링 연습장을 꺼내더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녀에게 내밀 뿐이었다. 뻔한 말이 흘러나와야 할 상황이었겠지만 귀밑까지 빨개진 낯선 남자의 얼굴만 보아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그녀는 잠시 숨을 길게 내쉬더니 숫자 세개와 네개가 조합되어 만들어진 전화번호를 귀찮은 듯 써 주었다.
'씨익~' 웃는 낯선 남자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내비쳤다. 그리고는 설마 몇날 며칠이 지난다고 해도 잊힐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었던지 한시간 전 쯤 그녀로부터 들었던 이름을 직접 전화번호 밑에 써 넣다가 뭐가 부족했는지 볼펜으로 머리만 긁적이고 있다. 처음 짙은 어둠 속에서 잠시 보였던 그 웃음을 살짝 보이면서 그녀의 입술은 다시 한번 달싹거렸다. 어렵게 알아낸 이름 두 자 앞에 또 하나의 성이 쓰여지니 그제서야 온전한 이름이 완성되었고, 낯선 남자는 그제서야 비로소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전화해도 돼?"
'풉' 하는 짧은 웃음을 흘렸을 것 같은 그녀의 얼굴이 전보다 훨씬 커다란 웃음을 담고 눈으로 들어왔다. 순간 낯선 남자는 짙은 어둠을 겨우 밝히고 있던 가로등 밑에서 처음으로 그녀의 제대로된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짧은 감탄사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잘 가'라는 인사를 하며 돌아서려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돌아세운 낯선 남자가 열기 오른 얼굴을 하며 낮게 말을 이어갔다.
"이별노래, 나도 좋아해. 그치만 앞으로는 듣지 않을 거야."
"......?"
"그게 말야. 이별을 담고 있는 노래만 좋아하면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된대. 그 이전까지는 상관없었지만 이제부터는 아니야. 나 헤어지는 것 따위는 알고 싶지 않거든. 그냥...... 그냥, 그렇다고."
"그래? 넌 그렇게 해. 난 계속 좋아할 거야. 왜냐면 난 이별노래가 젤로 좋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거니까."
단호하게 말을 끊으며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낯선 남자는 이 새로운 만남이 그리 길게 가지 않을 거란 예감을 떠올렸다. 불길한 예감은 비껴가지 않더라는 걸 알고 있는 낯선 남자의 불안감을 비웃기라도 하듯 밖으로 빠져 나온 레코드 가게 스피커에선 언제부터였는지 이동원의 이별노래가 입김보다 더 시리도록 흘러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