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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 화요일
해종일 비다
며칠째인지 모르겠다

한 번 시작한 장난 같은 비놀이가 하늘에게는 싫증도 나지 않는 겐가
하루 정도는 잠시 쉬어가도 좋으련만

남들에게는 징검다리 연휴의 마지막 날인 석가탄신일 터이지만
내게는 결혼 13주년 기념일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아내의 사전공작이 있던 탓인지
언제부터인가 뭔가 기대감에 반짝이는 두딸의 눈빛은 쉴 새 없이 일렁이고 있다
허니 언제까지 구들장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인 게다


결혼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살아지는 대로 밥숟갈만 내저어 왔던 게지

가끔은 짓눌려진 어깨가 너무나 버거워
속으로만 한숨을 내쉬었더니
체증인가 싶더니 울혈이란 이름으로 커져 있더라

지금은 증상마저 느끼지 못할 만큼
어느새 너무나도 익숙한 생활 그 자체가 되어 버렸고

비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성안길로 유모차를 앞세운다

작년까지는 결혼기념일에 넷이 축하했는데
올해부터는 다섯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이름, 다섯 명의 가족이다

장하게 비가 내리신다
배부르게 식사를 하고 나더니 아이스크림을 찾는 두딸

'그래, 아빠가 사다 줄께.'
빗길을 빨리 훑으면서도 머리 위로 손바닥 올려 놓는 건 잊지 않는다 - 얼마나 비를 피할 수 있으려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잠시 대형마트에 들러
11,900원짜리 18인치 대형피자 하나를 개비한다
이걸로 저녁까지 퉁치는 거다
어차피 오늘은 누구라도 밥상 차리기는 싫은 날이 아니더냐

패트 콜라 하나와 소주 한 병도 준비한다
분위기 돋울 와인이 더 어울릴 법한 오늘이지만
생활의 익숙함을 선택하는 것 또한 오늘을 사는 방법일지니

베란다에 나와 입김을 불어내니 그리운 얼굴로 보인다
등.대.지.기.
슬픈 눈망울이 있을 것 같은 자리에 떨어지는 빗방울
차마 눈물인 듯이 보여 그냥저냥 고개만 떨구게 되는
오늘은 13번째로 맞은 결혼기념일이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