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기분 돋우며 야채, 숯불, 철망값 따로 받는 목살 숯불바베큐집
8개월째 다 되어가는 셋째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두딸을 앞세워 집을 나서 봅니다. 딱히 갈 곳을 미리 정해놓지 않았기에 시장 쪽으로 방향을 잡고 보이는 음식점마다 기웃거려 봅니다.
차돌박이와 우삽겹이 섞여 나오는 고기집 앞에서 잠시 망설이는데 두딸이 입을 모아 "오늘은 왠지 여기 가기 싫어요."라는 말을 쏟아냅니다. 1인당 9,900에 무한리필, 메뉴와 주문량에 신경쓰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곳이어서 어쩌다 있는 외식때마다 가장 먼저 떠올리곤 했던 곳인데 왠일로 두딸이 강한 거부권을 행사하더랍니다.
"그래? 어디 가고 싶은 데가 따로 있는 건 아니고?"
"옛날 서래에 가고 싶어요."
충대 중문에 서래갈매기가 처음 오픈했을 때 서울 회기역에 있던 서래갈매기의 고기맛을 잊지 못하던 불탄이 열성적으로 가족을 데리고 자주 갔던 곳입니다. 서래 사장님도 블로그에 소개의 글을 써준 덕분에 홍보가 많이 되었다며 갈때마다 감사의 인사와 함께 그날 가장 좋은 고기부위와 병음료를 서비스로 내어주시기도 했던 곳이기도 하고요.
한창 학생손님들로 넘쳐나기 시작할 무렵, 인근 어딘가에 또 하나의 서래갈매기를 오픈시키며 이곳은 다른 사람에게 넘겼는데요, 불탄이 생각하기엔 아마도 상당한 권리금을 줬을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녁 무렵의 그곳은 서울 회기역에 있는 서래갈매기 본점과 마찬가지로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손님을 꽤나 볼 수 있었으니까요.
어쨌든 그곳은 지금 서래갈매기 간판이 내려진 상태입니다. 간판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서래갈매기였을 때와 비슷한 메뉴로 장사를 하고 있는데, 가끔 그 앞을 지나가다 보면 꽤나 손님들로 붐비더랍니다.
완전 반대 방향으로 방향을 잡았던지라 그와 비슷한 느낌의 고기집을 찾아보기로 하고, 아내와 의논을 다시 해 봅니다. 보쌈집도 괜찮지 않겠냐는 아내의 말에 두딸도 쉽게 동의를 하더군요. 아내가 알고 있다는 보쌈집을 향해 다섯 가족의 고고싱은 탄력을 실어갑니다.
그런데 불탄의 눈에 갑자기 뭔가가 보입니다. 에어라이트라고 하나요? 공기를 넣어 높이 세워놓은 광고물, 그게 삐죽이 튀어나와 있는데 주변에 음식점처럼 보이는 건물은 보이질 않으니 여간 쌩뚱맞아 보이는 게 아니더랍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너덜한 현수막도 함께 보였는데 팔고 있는 메뉴는 600g 한근에 9,900원이라고 하는 목살뿐입니다.
특이한 것은 고기를 굽는데 필요한 숯불과 고기를 먹을 때 필요한 소소한 것들은 따로 6,000원이란 돈을 내고 사먹어야 한다는 건데요,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회를 먹을 때나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이지 싶더랍니다.
'다 좋은데 대체 이곳이 어딨다는 거야?' 주변을 둘러봐도 음식점 비슷한 건물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눈이 멈춘 곳이 바로 주차장처럼 보이는 공터, 그리고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비닐천막.
'우리 저기 가 볼까?' 눈짓으로 뜻을 전달하며 불탄이 먼저 유모차를 밀고 들어갑니다. 한쪽에 있는 조그마한 집모양의 건물에서 아줌마 한 분이 나오시며 반갑게 맞으십니다.
"몇 분이세요?"
"어른 둘, 아이 둘요."
막상 천막 안으로 들어와서 보니 가격이 살짝 바뀌어져 있습니다. 600g 한근은 500g으로, 9,900원의 가격은 12,000원으로......
그래도 정육점에서 국산 삽겹살 한근만 사려 해도 18,500원을 내야 한다는 걸 감안해 봤을 때 너무나도 저렴한 가격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지라 따로 불만은 생기지 않습니다. 게다가 술 좋아하는 불탄이 아내와 함께 반주로 즐길 수 있는 소주 한병 값도 2,000원밖에 하질 않으니가 오히려 만족스럽기까지 하더랍니다.
잠시 후, 예의 그 아줌마가 목살 생고기가 담긴 접시 하나와 자잘한 크기의 숯불을 고기굽는 통에 올려놓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고기굽기작업에 들어갑니다.
역시 숯불 위에 철망을 올려놓고 직접 굽게 되니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갑니다.
"와~, 아빠 여기 정말 좋아요. 꼭 캠핑온 거 같아요."
두딸이 환호성을 지르며 난리를 칩니다.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주 좋은가 봅니다. 캠핑이라는 것도 TV에서나 봤던 거지 실제로 경험을 해 본 적도 없으면서......
그런 두딸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아내가 임신하기 전까지는 두딸이 너무 어리다는 핑계로, 아기가 태어난 이후에는 아기가 너무 어리다는 핑계로, 가까운 나들이조차 변변찮게 해주지 못한 게 생각나 두딸에게 너무나 미안해지더랍니다.
두툼하게 썰어서 내온 생고기에 굵은 소금을 뿌려가며 구워 먹을 때의 느낌은 두딸이 말한 캠핑장의 바베큐 파티가 분명히 연상되기는 합니다. 접시도 일회용 접시요, 샘물통에 담겨있는 물을 따라 마시는 컵도 종이컵입니다. 심지어 고기를 먹는 젓가락도 나무젓가락이고요.
그나마 반찬으로 나온 콩나물국은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주고, 쇠숟가락을 사용케 해 주셔서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고기집에서 공기밥 대신에 햇반을 먹을 수 있고, 따로 입맛이 땡기지 않으면 컵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야외 분위기를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맛있게 먹는 두딸의 젓가락 속도를 맞추기에는 고기 굽는 속도가 도저히 따라주지 못하더군요. 하지만 2번째로 시킨 고기에는 아내와 함께 천천히 즐길 수 있는 여유까지 있더랍니다.
"다음에 또 와요."라는 두딸의 말에 조만간 다시 들르고마 하는 뜻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계산을 치릅니다. 특별히 음식점 이름도 없어 에어라이트에는 '목살 숯불바베큐'라고만 써 놓았을 뿐이지만, 근처에서 고기 만큼은 제일로 자신한다는 아줌마의 넉넉하고 소박한 웃음이 마음을 편케 만듭니다.
카드영수증에만 쓰여진 가맹점 이름 '사람사는세상'이란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면서 집을 향한 발걸음에 힘을 실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