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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셨어요?"
"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역시나 세월의 무게는 누구도 쉽게 내려놓지 못하나 보다. 기억이라는 것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망각을 향해 치달리는 법이겠지. 오랜만에, 근 2년 여 만에 토요일 오후 시간을 이용해 다시 찾은 장터부속구이 사장님은 예상했던대로 쉽게 불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셨다.

"어른 둘에 아이 둘이고요. 애기가 하나 더 있네요."
"이쪽은 너무 추우니까 저쪽으로 앉으세요."

가뜩이나 무더운 날씨에 땀이 흐를 지경인데 추울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왜 그렇게 반갑던지......


충대 중문 장터부속구이 실내 모습


식사나 술 한잔 하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었던지 한두 테이블에서만 손님이 고기를 굽고 있었다. 유모차에서 아기를 안아 들은 아내와 두딸이 입을 모으기로 약속이라도 한듯 반가운 인사를 하며 들어섰다.

"아! 너희들이구나! 많이 컸네. 세빈이였나? 세린이? 세빈이?"

그래도 사장님의 기억 언저리에는 여전히 두딸의 이름이 남아있었나 보다. 안타까운 건 세빈이랑 세린이가 대체 누군지 전혀 모르는 불탄의 가족이지만......

 

예전에 주방이 있던 자리


실내는 많이 바뀌어 있었다. 원래 주방이 있던 자리에는 단체손님을 맞을 수 있는 기다란 사각탁자가 들어서 있었고, 환기구(후앙이라고 하나?) 시설도 얼마 전에 새로 했는지 번쩍번쩍 광택까지 흐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엉? 메뉴도 살짝 바뀌어 있었다. 예전에는 '모듬'과 '살코기'를 반반씩 해서 곧잘 먹었는데 '살코기' 메뉴는 사라지고 부속고기별 메뉴가 새로이 보였다. 일단 메뉴에 있는 모듬 한 접시를 주문하고, 남아있는 기억을 하나씩 꺼내가며 정겹게 담소도 나누었다.

 

깻잎과 함께 이름이 가물가물한 푸성귀를 함께 무친 반찬

김치. 아마도 김치치즈에 들어가는 것도 이게 아닐까 싶다

옛날 시골에서 살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시레기 된장국.


항상 웃음이 고우신 안사장님이 쟁반에 받쳐오신 반찬 몇가지를 테이블 위에 세팅하셨다.

 

 

김치 위에 듬뿍 올린 치즈

여분으로 갖다주신 치즈


예전부터 불탄의 두딸은 김치 위에 치즈를 얹어 불판 위에 올려놓고 먹는 김치치즈(?)를 제일 좋아했던지라 사각 용기의 김치치즈와 언제든지 더 뿌려 먹으라고 따로 가져오신 치즈 접시를 보고는 환호를 했다.


예전 메뉴에서는 살코기라고 했던 부위


메인메뉴인 고기 굽기에 나섰다. 주문한 '모듬 한접시'에서 가장 먼저 아이들과 아내를 위해 예전에는 '살코기'라 불렀던 부위를 석쇠 위에 올렸다.



이제 남은 것은 제대로 부속고기다. 염통, 꼬리, 막창, 껍데기, 기타 등등......

 

 



고기가 익기 기다리던 두딸은 '누가 김치치즈를 길게 늘어뜨리나?' 시합을 하듯 경쟁적으로 쭉쭉~ 늘려가며 맛있게 먹었다.

 

 



그러는 중에도 고기는 때깔좋게 익어가고 맛있는 고기 굽는 냄새를 참지 못해 '쪼르륵~'하며 아우성을 치던 뱃속에 한점 한점 음미하며 채워갔다. 

 

 



역시 사장님의 내공이 담긴 가위질은 오소리감투에서 빛을 발했다. 항상 그렇듯이 오소리감투는 세로로 길게 잘라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는 오소리감투철학을 피력하시면서......

그런데 예전에는 못보던 것이 유난히 눈에 크게 들어왔다. 요렇게 생긴 놈이 과연 뭐시기란 말인가? 사장님께 긴급 요청 SOS를 쳤더니 안사장님(사장님 부인)께서 대신 말씀해 주셨다. 바로 꼬리라고, 꼬리...?

 

 



참 맛이 쫀듯쫀듯하니 고소하면서도 감칠맛이 났다. 꼬리곰탕에 들어있는 살점을 완전히 식혀서 먹었을 때와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오래도록 잊지 못하게 될 맛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갈매기살 반접시를 더 구워 먹고, 그리고 늘 그렇듯이 아내와 두딸은 2인분 같은 국수 한그릇을 나눠 먹은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치르고 나서 가게를 둘러보니 빈 테이블 하나 없이 꽉 차 있었다. 인근의 학생들, 직장인, 가족 단위의 웃음이 테이블 마다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