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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집안은 뭘해도 잘 되나보다.

르노삼성이 2009년 임금협상안을 가결시켰다는 보도가 나왔다. 자동차라는 금속, 화물과 함께 노조의 파워가 가장 강한 산업부문임에도 불구하고 르노삼성은 9년을 한결같이 무분규임금협상에 성공한 것이다. 동종업계에 근무하는 노사관계자들에게는 정녕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리 성공적인 합의로만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투표를 통해 실시한 임금협상합의안 결과의 이면에는 42%에 해당하는 반대자 내지는 무응답자가 있었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반수를 넘는 찬성표가 갖는 의미가 더 크지만 말이다.


서울사무소 (서울시 중구 봉래동)



르노삼성이 사원대표위원회와 협의한 내용을 살펴보면 승급과 승호, 자기계발비를 포함하는 조건으로 기본급을 평균 51,000원 인상하였고, 사원 전체에게 격려금 100% 지급을 약속하였다. 아울러 명절 근무 수당(50,000원)을 신설하였고,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알 수 없지만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는 제도를 개선한다는 것에 합의하였다.

중앙연구소 (경기도 기흥)

지난 해, 세계적인 불황의 여파는 한국 경제에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물론 자동차업계에서는 그 충격이 더할 나위없이 크게 작용하였다. 그러한 시기에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리서치 결과를 보면 일당 50,000원 이상의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휴가도 포기하겠다는 답변자들로 넘쳐 났었다. 가계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급여에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그런 응답자의 생각에 강한 동조를 하였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올해 2/4분기를 넘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무급휴가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고정비로서의 급여부담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에 여념이 없었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급여지급까지 미루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으며, 작년 연말에서부터 올해 연초에 이르는 시기에는 근 20여일에 이르는 휴가를 단행하기도 했다.

삼성은 전통적으로 노조가 없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강성노조를 결성하거나 반골기지가 엿보이는 직원을 채용하지 않기 위해 관상쟁이를 면접참관인으로 둔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을 정도이니 삼성과 노동조합을 함께 엮어서 생각한다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어찌되었건 노조를 결성하지 않아도, 그리고 며칠씩 단식을 해가면서 투쟁을 하지 않아도 사용자가 먼저 직원들이 납득할 만한 급여와 복리후생을 제안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대다수의 봉급생활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전제하에서.

부산공장 (부산 신호공단)

르노삼성이 별다른 진통 없이 합의로 이끌어낸 2009년 임금협상안이 성공적인 모델을 제시하며 전 산업부문으로 확산되었으면 한다. 물론 내부적으로 파헤쳐보면 르노삼성이라고 해서 별다른 것이 없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산업 전반에 걸쳐 확산되고 있는 노사 간의 대립구도를 아전인수의 수단으로 몰고 가려는 간악한 자들의 쉬고도 탁한 목소리를 더 이상 듣고 싶지는 않다. 그 욕심이 만들어낸 목소리는 결국 주변 산업은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원천이 되는 소중한 가정에까지 불안감으로 도배를 시킬 수 있다는 것. 그것만은 노사 양측 모두가 깊이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경기가 조금씩 나아지니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근로를 하는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낮추었던 근로자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한다. 또한 사용자의 입장에서도 숨통이 트여지니 더 큰 욕심을 가지며 근로자를 억압하려 들고 있다.

지금은 사막을 횡단하는 고통을 인내하던 여행자가 이제 겨우 한 모금 생명수를 목으로 넘긴 형국이다. 얼마 전까지 인내하며 노력했던 노사의 모습을 아직까지는 견지해야 할 때이다. 건방을 떨고, 거들먹거리다가는 또 다시 기업 존망의 벼랑에 내몰릴 것이고, 곧바로 잽으로 이어질 연타의 충격으로 커다란 데미지를 입게 됨으로써 결국 KO 당하게 될 것이다. 시장경제라는 사각의 링 위에서 쓰러진다는 것은 역사의 기록에만 남겨질 뿐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버린 무수한 절대자들처럼 말이다. [by 불탄 090831]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