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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사위는 오후녘에



아프게
제쳐진 일기의 눈물자욱 너머로
둥그런 인간의 군상이 자리하면
벌건 아가리 크게 버린 독사의
허물벗는 순수를 짓밟는다
수돗가의 마른 시멘트 바닥
물기 잃은 수도는 겨울의 마음을 갖고
미워하는 인간에게 독기를 뿜어낸다


찌꺼기가
볼펜의 찌꺼기가 유리판 위에 해부되어 지고
거짓된 재판관의 판결을 기다린다
위증된 목격자의 입발림으로
여럿이 하나를 병신 만든 것으로
혼란된 정의를 생각케 된다


뿌리 잃은 나무가 안타까이 쓰러지면
핏줄기 잃은 역사가 무슨 죄가 있는 지
소수의 인간에게 억압 당한다
비누 냄새 날아간 뒤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흔들린다


가방은 먼 데 있고

이 자리에서 어지러운 물구나무 선다
세상은 옳게 보인다


난 물구나무 서 있는 데도



1984.05. 불탄(李尙眞)

- 영고문예부(Y.T.C.F.) 部誌 "해일"




문학이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시를 쓰고 에세이를 적어내던 시절이었다. 손가락 물집 잡히는 것도 모른 채 몇 시간이고 A4 용지 위에다 직접 부원들의 창작글을 옮겨 적었다. 온갖 상상을 동원해 페이지 마다 삽화도 그려 넣었다. 저마다의 주머니에서 몇푼씩 돈을 거둬 복사를 했다. 호치케스(스테이플러)를 찍어서 제본을 했다. 그리 해서 만든 첫 部誌 "해일"을 들고 얼마나 감격해 했을까?  Y.T.C.F.(젊음, 사색, 창조, 화목)가 생활의 가치였던...... 가끔은 문학에 대한 열정 만큼은 기성 문인보다 뜨거웠을 그 때, 그 시절의 순수함으로 돌아가고 싶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