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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는 느낌으로 시작했던 오늘.
나이를 먹은 탓인지 당췌 감당이 되지 않아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바지 안에다 남성 타이즈를 덧입어 보았다.

살짝 불어오는 바람에 칼날이 서렸는지 목 주변을 세차게 베어왔고,
어쩔 수 없이 자라목이나 되는 것처럼 한껏 웅크린 상태에서 방한복 지퍼를 턱밑까지 끌어올렸다.

남성 타이즈, 내복의 따뜻함보다는 덜하겠지만 그래도 바지의 맵시를 살린다는 쪽에서는 더 낫다는 생각이다.
사무실 난방이 잘돼 있거나 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거북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추운 날, 맨살을 살짝 보이게끔 하는 것이 젊음을 상징하는 것이라 믿었던 때가 생각난다.
학창시절에는 친구의 바지 아랫단을 잡고 살짝 들어올려 내복을 입고 있기라도 할라치면 여지없이 쏟아냈던 말이 바로
"야잇! 너 애늙은이야? 벌써부터 삭신이 쑤시면 나중에 어쩌려고 그래?"였다.

자주 어울리는 친구그룹에도 그 사실을 알려 창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던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시간일 수밖에 없는...

내가 청년이었을 때는 겨울의 초입에서부터 늦봄이 될 때까지 늘 내복을 입고 계신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내가 중년이 되어가면서는 그러한 아버지 모습을 빼다박은 따라쟁이가 되어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아! 언제까지나 가슴에 담아둘 수 있을 것 같았던 "청춘"이라는 뜨거운 존재가
어느 사이에 내 몸은 받쳐주지 못하고, 내 사고는 거부하게 된 것일까?

남성 타이즈 하나 갖춰 입었다고, 별 쓰잘데기 없는 생각에 노닐다 시계를 보니
아뿔싸! 벌써 퇴근시간이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