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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하늘이 비를 뿌리고 계절이 바람을 부르고는 있지만 며칠 째 이어지는 푸근한 날씨가 좋기만 하다.

주중에 제사를 지내고, 두 딸의 치과검진도 마친 탓에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오늘, 15개월째 된 막내 딸을 안아 들고 서둘러 지역 보건소를 향했다. 언제부터인지 아내가 예방접종 맞춰야 한다고 채근했기 때문이었다. 혼자서는 버겁다는 생각에 어머니를 동행하기로 하고,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보건소까지 택시로 이동했다.

늘상 그랬던 것처럼 문진을 위한 설문지를 작성하고 건강수첩과 함께 진료를 보는 의사에게 내밀었더니, 왠일인지 의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 아닌가.

"무슨 접종 때문에 오셨어요?"
"네? 그게... 저... 집사람이 지난 주에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고 해서요. 건강수첩만 지참하면 알아서 해주실 거라고..."
"그래요? 예원이 같은 경우에는 지금 오실 필요가 없었어요. 다음 예방접종은 5월에 있거든요."
"네? 아... 그래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옆에 함께 서 계시던 어머니께서도 조금은 황당해 하셨고.

"확인 한 번 해 보시죠?"

진료의사의 말을 흘려 들으며 뭔가에 쫓기듯 진료실 밖으로 재빨리 나섰다. 그리고는 분풀이라도 할 기세로 아내 핸드폰 번호를 세차게 눌렀다.

"응. 난데. 오늘 뭔 접종을 해야 되는 거였어?"
"디피티인가 뭔가 하는 거 4차접종 하라고 보건소에서 문자 왔었는데 아니래요?"
"응? 디피티라고?"

딸아이의 건강수첩을 통해 확인해 보니 DTaP인 것 같았다. 해서, 다시 진료의사에게 건강수첩을 들고 가서 아내에게 들은 사정 얘기를 들려줬더니 진료의사가 하는 말, "우리 보건소에서는 아이의 개월 수에 맞춰 문자를 보내고 있어요. 그리고 예원이 같은 경우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5월 중순에 접종하면 되고요."

'우씨! 뭐, 그런 무책임한 말이 있어?' 꽉 잠궈놓은 목구멍 탓에 밖으로 빠져나오지는 못하고 그저 벌렁거리는 심장 주변에서만  맴도는 울분이었다.



"뭐, 그냥 간만에 어머니와 드라이브 한 셈 치면 되죠."

그냥 아까운 택시비만 날렸다는 어머니 말씀에 억지로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는지 내 입술과 혓바닥은 열심히 움직였지만 누가 들어도 허망하기만한 답변이라는 것은 다 알 것만 같았다.

'에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이지, 누굴 탓하겠어.'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