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껍질 속의 사랑 1 - 결혼 2년차 어느 여름날
아침 일곱시.
오늘은 회사 전력선 공사로 출근을 하지 않는다. 우리 꼬마의 출근을 졸음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 보다가 다시 잠이 들었고, 열시가 넘은 시간에 어머니가 긁어서 말려 주신 누룽지에 물을 부어 끓여서 늦은 식사를 했다. 구수한 숭늉까지 말끔히 마시고 난 뒤, 난 오늘이란 시간을 무엇을 하고 보낼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집안이 많이 어지러워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직장 일 하랴, 가정 일 하랴 힘도 들겠구나...'
대청소를 하기로 작정을 하고...
일단 세탁기에 빨래감을 잔뜩 때려넣고 눈짐작으로 세제를 탄 후 자동세탁 버튼을 힘차게 눌렀다. 그런데 그게 실수였나 보다. 이어진 다음 행동들이라는 게 싱크대에 있는 냄비와 프라이팬,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어 반찬이 말라 붙어있는 접시 등을 화장실로 끙끙거리며 끌고 가서는 미리 물 받아 놓은 다라(?)에 때려 넣는 것이었으니...
'에라잇! 하는 김에 다 해버리자...'
꼬마(불탄이 아내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지시어)가 사용하고 있는 화장대 위에 널브러진 온갖 잡동사니까지 방바닥에 끌어 모았더니 태산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렷다. 이미 작정했으니 어쩌랴. 걸레와 행주를 빨아 하나씩 닦아내고 문질러서 보기 좋게 정리할 수밖에.
걸려있는 수건이며, 바지며, 셔츠 들을 보기 좋게 개켜 놓고, 대충 휴지를 비롯한 쓰레기를 봉투에 담아 놓고, 빨아 논 걸레로 쓸고 닦고 문질렀더니 "에고! 에고..." 앓는 소리가 절로 난다.
와우~ 정말로 이거 장난 아니다. 그래도 혼자 살 땐 매일 해서 그런지 힘든 줄 몰랐었는데, 둘이 살아가니 왜 이렇게 치울 게 많은 것인지... 이러다가 애라도 덜컥 낳게 되면 두배가 뭐냐? 세배로 힘든 집안 청소와 빨래가 될 것 같다.
'절대로 애새끼는 낳지도 말고, 낳을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지, 이거야 말로 죽노동이 아닌가?'
세탁기에서는 탈수까지 다 되었다고 "삑삑" 대고, 화장실에선 설겆이 후 걷어놓은 식기들이 물방울 소리를 "똑똑" 내고, 환기시키려 열어놓은 창문으론 물오징어 싸다면서 빨리 사가라는 소음이 "웅웅" 대고...
일단 탈수된 빨래들을 세숫대야에 담아 건조대에 널어놓고, 또 다시 빨래감을 세탁기에 때려 넣으니 아까보다 조금 많은(실수로 한 숟갈 더 넣었음) 세제를 넣었음이야. 그래도 어쩌겠누, 이미 자동세탁 버튼을 누른 다음인데...
빵빵해진 쓰레기봉투, 그래도 조금이나마 더 채워보겠다고 이것 저것 다 쑤셔박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한껏 대견하기만 하다. 행여라도 터지지나 않을까 싶은 걱정에 잘게잘게 묶으면서 드는 생각이라는 게 '난 죽어도 전업주부 안할란다!'였다면...? 정말로 난 죽어도 엠비시 모 프로그램(아줌마였나?)에서 존레논이 어쩌구 어쩌구 하면서 전업주부를 선언한 그 한심한 놈처럼 그렇게는 못살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퇴근해서 방문을 열어 본 꼬마의 눈은 정말로 눈깔사탕보다도 더 커졌고, 눈동자에 깃든 경악의 빛은 적어도 220볼트를 배는 넘었을 듯 싶었다.
"와우~~~ 오빠 오빠, 뭐 먹고 싶어? 내가 다 해줄께..."
난 소박하게도 된장찌게를 주문했고, 우리 꼬마는 감자와 팽이버섯과 두부를 넣어서 정말로 맛있게 끓여줬다. 거기에서 끝냈어야 하는데 철없이 내가 했던 말이라는 게...
"어때? 오빠 살림 잘하지?"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