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껍질 속의 사랑 4 - 바베큐 치킨과 소주 한 잔
차가운 바람에 움츠려드는 어깨의 잔떨림이 이어질수록, 어둠이 거리의 가로등에 불을 밝히면서 깊어갈수록, 마음의 한 귀퉁이에서 스스로가 외롭다는 느낌이 짙어갈수록, 난 어쩔 수 없이 술 한잔의 유혹에 빠져들게 된다.
하얀 편지지에 낙서처럼 써 내려가는 글 몇 줄에 만족하였던 어린 시절 딜레탕트도 아니고, 또 애를 몇 낳아놓고 학원비를 포함한 교육비 걱정에 한숨을 몰아쉬는 중년의 아버지도 아직까지는 아닌데도.
그래서인지 아직은 센티멘탈한 분위기를 스스로 만들어서 그 분위기에 취할 수 있는 어정쩡한 나이,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려가면서 불붙는 한 순간의 화려함을 분출할 수 있는 용기도 없으면서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또 한번 술 한잔의 유혹에 빠져 들고 있는가 보다.
확연히 느껴지는 쌀쌀한 바람을 등에 업고, 꼬마와 난 바베큐 치킨 집으로 기세도 등등하게 전진해 간다. 몇백 원을 아끼기 위해 치킨 집 옆 슈퍼에서 캔 콜라 하나를 사서 빨대를 꽂아주는 센스도 잊지 않고서.
"사장님... 여기 바베큐 한 마리하고 소주 한 병 주세요"
주문이 접수되는 순간부터 우리 꼬마의 두눈은 빛을 뿌리기 시작한다. 뛰어난 후각을 동원해 금방 튀겨 내온 팝콘 한 바구니를 게눈 감추듯 해치우는 건 물론이요, 야채 샐러드를 담은 접시가 반짝이도록 깨끗하게 비우는 것도 기본이다. 늘 그렇듯 꼬마의 모든 신경은 이제나 저제나 나오기만 기다리는 바베큐 치킨에 집중되어 있겠지만 말이다.
"오빠, 근데 여기 치킨 엄청 맛있지?"
"...응"
대답은 가능한 빠르고 짧을수록 좋을 터이다. 기다리고 있는 치킨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배고픈 꼬마에게 긴 대답이나 생각을 요구하는 말을 하게 되면 자칫 분위기가 깨질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기다리던 치킨이 나오면 10분 정도는 눈으로만 대화를 하게 된다. 왜냐고? 그냥... 먹는 일에 충실하기 때문이지 거기에 별다른 이유가 또 뭬가 있으리오.
늘 그렇듯 소주 병에 두어 잔의 분량만 남게 될 즈음이면 꼬마의 제안을 들을 수 있다.
"오빠, 우리 이제 이걸루 안주하자"
헉! 그럼 지금까지는 안주가 아니었다는 말인 거지? 치킨이 담겨 있는 그 커다란 접시에는 닭 날개 하나와 출처를 알 수 없는(아마도 몸통 중 어느 부위일 거란 짐작만 할 수 있는...) 살 한 뭉텅이만 남아 있는 참상을 보면 늘상 갖게 되는 생각이다.
"...그래. 그러자고..."
아무렴 어쩌겠어. 부족한 술기운은 소주 한 병을 더 추가함으로써 달래면 되는 거고, 부족한 안주는 무한 리필이 되는 야채 샐러드로 대신하면 되는 것이니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닌 것을. 꼬마도 나도 발그레한 얼굴에 담은 것은 술기운만이 아닌, 가난한 행복까지 함께 누린 것을...
그렇게 또 하루가 쉬이 잊혀지지 않을 소중한 추억으로 새겨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