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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을 하였더니 글쎄 사무실이 5층인데도 깜깜하기만 하다. 게다가 우리 전략팀 직원들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고...

'어? 혹시 오늘이 휴일인가? 그것도 아니면 오늘이 휴무라도 되는 건가?'

순간 다가오는 혼란같은 어지러움. 그러다 문득 보여지는 유령같은 그림자. 겁을 더럭 먹고 힐낌 쳐다보니 '휴~~~, 다행이다' 통역실에서 근무하는 여직원이었다.

"우리 전략팀 직원들 다 어디로 갔어?"

쌩긋 웃으며 고객에게 대하는 말투 비슷하게 그 통역직원이 하는 말이라는 것이 오늘 아침 일찍부터 전략팀 직원들은 통역실에 마련된 회의실에서 미팅을 하고 있다는 거다.

'자식들... 열심히 하는군 그래~'

흐믓한 마음으로 회의실에 얼굴을 비치면서 잠시 업무에 대한 조언을 하고 난 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이것저것 뒤적이며 업무를 보는데도 당췌 전기는 들어올 생각을 안하는 거다.
컴퓨터가 전기를 먹지 못해서인지 삐친 노처녀나 되는 양 시꺼먼 모니터를 내세우며 무어라 항변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에이!!... 월요일 아침부터 이게 뭐야?'

직원들과 때이른 점심을 먹은 뒤, 오늘은 정상업무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 모두 귀가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물론 나 또한 방황하지 않고 곧장 집으로... 꼬마의 퇴근시간만 기다릴 수밖에.

심심함이 극치에 다다르고 있을 때, 드디어 퇴근을 해서 집으로 온 꼬마의 두눈에는 뭔가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한 눈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문득 내 뱉어진 한마디...

"뭐 먹고 싶은데?"

빙긋이 웃으며 득의해 하는 표정에서 '아! 오늘 저녁에는 외식해야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거의 반사적으로 내 입을 통해 나온 말이다.

"아무거나... 대신, 맛있는 걸로..."

참 짧고 간결한 대답이다. 하기사 그 말의 전제가 되는 '싸고'라는 단어는 차마 입에 담지 않았을 테니....




그래 오늘은 감자탕으로 낙찰을 봤다. 꼬마가 해 주는 감자탕이 대한민국에서 젤루 맛있다고 생각하곤 있지만 그렇다고 정육점에서 등뼈를 사가지고 와서 해 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지.

감자탕 집에서 회사 돌아가는 이야기, 벤처기업의 순이익 발생을 저해하고 있는 주가조작 이야기, 개밥의 도토리가 된 이인제 씨 이야기... 등등 오늘은 그래도 제법 폼나는 이야기를 반찬으로 삼아 감자탕의 뼈다귀를 정말로 깨끗한게 뜯어 먹었다. 물론 반주로 소주 2병을 작살내는 것 또한 잊지 않았지만...

"오빠! 이번 달에 영희 아가씨 결혼식에 갈거야?"
"응... 못가게 될 것 같은데?"
"왜?"
"김천에서 하잖아. 더구나 일요일인데 결혼식에 갔다가 일요일 출근 힘들어서 어떻게 하니?"
"그래?..."

인간의 도의상, 그것도 시댁에 대한 도리상 가야만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정작 신랑이 안가겠다는 말을 하자 또다른 계획을 갖고 있었던지 지체 없이 하는 꼬마의 말이란 것이...




"오빠! 우리 그럼 그때 벚꽃 보러 가자. 하다못해 여의도에라도..."
"꼬마야! 윤중로 벚꽃이 얼마나 멋있는데... 진해나 군산항 벚꽃은 여의도에 비하면 새발의 피야"

우리 꼬마 여행을 다녀보질 않아서 진해나 군산항 벚꽃축제가 얼마나 화려한지 모른다.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래? 그럼 윤중로 벚꽃 구경 가는 거 약속한 거다"
"그럼! 오빠가 우리 꼬마 얼마나 사랑하는데 거기를 안데리고 가겠니?"

휴~~~
일단은 성공이다.

미안하다. 아내야!
이 남편,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없는 시간이라도 꼭 내서 멋진 벚꽃 구경 시켜줄 테니 이번에는 알고도 그렇게 속아주라~~~

미안... *^^*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