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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에서 뭔가를 요구하는 소리가 아우성치고 있다. 한 번쯤은 그냥 넘어갈 법도 한데 이놈의 뱃속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잠시동안의 타협도 통하지 않는다.

사무실을 나서서 지정식당으로 갔다. 혼자다. 지금 시간으로는 아무리 빨리 서두른다 하더라도 밤 11시가 넘어야 겨우 집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다. 어느 간 큰 사내가 그 시간에 집에 들어가서 아내에게 밥을 달라고 강짜를 부릴 수 있겠는가.

회사에서 지급된 식권을 지갑에 두둑히 챙겨 가지고 호기롭게 제육볶음을 시켰다. 다소 여유로운 마음으로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다 무심코 눈길이 머문 곳은 바로 업소용 냉장고. 그곳에는 자신을 불러주길 기다리고 있는 소주병들이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소주 한 병과 소주잔을 셀프서비스로 꺼내와 '또르륵' 소리가 나도록 한 잔 따랐다. 한모금 목구멍을 타고 흘러가는 알콜 기운이 허기진 뱃속에 따뜻하게 퍼져가면서 기분을 좋게 해주는 동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제육볶음 접시가 상추와 함께 놓여졌다.

순간 좀전에 전화 통화를 했던 꼬마(=아내)가 맘에 걸렸다. 혼자 무슨 맛에 밥을 먹겠냐며 라면을 끓이겠다고 했던...

'칫! 우리 꼬마 제육볶음 엄청 좋아하는데...' 미친년 비라도 맞은 것처럼 혼자서 궁시렁거리며 먹는 고기와 술이 맛있을 리가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 근처에서 꼬마를 불러내 포장마차라도 갈 걸 그랬나?' 왠지 꺼림칙한
마음에 급히 소주잔을 들이키고 2시간 거리나 되는 귀갓길을 서둘렀다.

우리 꼬마, 반갑게 맞아주는가 싶더니 솔솔 풍겨나오는 소주 냄새 탓인지 금새 치켜 올라간 눈꼬리는 천장이라도 뚫을 기세였다.

"오빠! 뭐 먹고 오는거야?"
"응~ 뭐... 그냥... 대충..."
"술 마셨지?"
"응~ 그냥... 반주로 한잔..."

속상했나 보다. 이럴 줄 알았다. 은단이나 껌을 씹어 조금이나마 알콜 냄새를 희석시켰어야 했다.




"오빠가 낼은 토요일이니까 맛있는 거 사줄께"
"정말?"

꼬마가 이리 대답할 때의 모습은 천상 애기다. 
오늘따라 왜 그렇게 꼬마가 사랑스럽게 보이는지, 에구~ 에구~ 주책을 바가지로 부리면 철 들기 전에 망령 난다고 하던데... 아무튼 "사랑해"라는 말과 함께 마빡(이마인가?)에 쪽소리 나도록 뽀뽀를 해주는 깊은 밤, 이렇게 또 하루가 채워지는가 본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