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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빠가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섰을 때 깜짝 놀랐단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아빠를 향해 우리 예쁜
30개월 세 살배기 예진이가 "시작"이라는 구령과 함께 "아빠! 힘내세요"를 힘차게 불러줬으니 말이다. 사실 직장에서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섰을 때 딸아이의 재롱을 본다는 것, 확실히 세상의 모든 아빠들에게 있어 피로회복제가 아닐 수 없을 거다.

그런데...... 예진이가 불러주는 동요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라는 후렴 부분만 계속 이어지더구나. TV CF에 나오는 배우 송혜교를 통해 배운 동요였을 테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겠지.




그렇게 대여섯 번 반복하던 예진이는 스스로도 이상했던지 슬슬 눈치를 보는 것 같더구나. 그런 예진이를 위해 엄마는 한 옥타브 높인 힘있는 목소리로 "힘내세요"로 대신 마무리를 지었고, 그제서야 "와~" 하는 소리와 함께 박수를 치며 끝냈지.

"아빠. 나 잘해찌? 예지니 잘해찌"
"그럼, 그럼. 아주 예쁘게 잘 불렀어요. 고마와요."

그런 아빠, 엄마의 모습에 시새움이 났던지 큰딸 예린이도 "아빠! 나도... 나도... 나도 노래 불러 줄래요"라며 아빠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서 부른다는 것이 팝송(?)이었지. 언니의 위신을 세우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44개월 다섯 살배기가 목청 높여 부르는 노래는 다름 아닌 "알파벳송".




"에 비 띠 디 이 에프 지, 에치 아 제이 케이 엘 렘 렌 노 피..."

그런데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이란 말인가? 어느 끝부분에서 갑자기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로 마무리를 하더란 말이지.

멍해 있는 아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불렀다는 안도감에 예린이는 좋아라 펄쩍펄쩍 뛰었지. 그런 예린이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라도 아빠랑 엄마는 박수와 함께 잘했다는 말을 거푸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데, 거기서 끝냈으면 좋았을 것을 애먼 아빠의 장난기가 거기서 발동했다는 거......

"앵콜! 앵콜! 예린아, 아빠한테 '반짝반짝 작은 별'도 불러줄래요?"

"네! 언니가 불러줄께요"라는 대답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예린이, "반짝 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추네, 동쪽 하늘에서도, 서쪽 하늘에서도......"에 이르렀을 때 아빠가 속으로만 웅얼웅얼 하고 있던 알파벳송을 크게 불렀지. 그랬더니 예린이의 노래는 이렇게 마무리가 되어버렸어.

"...... 반짝 반짝 작은 별, 떠브 엑뜨 와 제"

흠... 아무래도 이상했던 모양이다. 이전까지는 노래가 끝나면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라 했던 우리 예린이가 아무 말 없이 벽에 등을 대고 그래도 앉아버렸지.

에고! 괜한 장난으로 예린이를 시무룩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아빠가 예린이랑 예진이가 너무나 예뻐서 장난을 좀 친 거니까 이해해주렴. 사실, 우리 어른들도 "어머니 은혜"라는 노래를 부르다가 곧잘 "스승의 은혜"로 유입되곤 한단다. 그때마다 얼굴은 화끈거리지만, 그래도 어쩌겠니? 그냥 웃고 넘겨야지.

더군다나 너희는 아직 세 살, 다섯 살의 어린 아이니까 얼마든지 헷갈릴 수 있는 거야. 아니, 그런 헷갈림 정도는 되려 애교일 수 있는 거란다. 덕분에 아빠는 이렇게 지금도 그때 모습을 떠올리며 웃음을 짓고 있잖니.

예린아, 예진아! 아빠는 말이다.

이렇게 조금씩 성장해 가는 너희를 보고 있으면 온 세상의 모든 행복이 아빠랑 엄마한테만 있는 것 같단다. 노래를 부르다가 틀리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말이다. 그것보다는 지금처럼 언제나 맑고, 밝고, 건강하게 성장해주렴.

이제 곧 아침이 올 거야. 오늘은 아빠랑 엄마가 예린이랑 예진이와 해종일 놀아줄께. 충분히 기대하고 있으렴. 자! 약속... 도장... 복사...


- 060827. 아빠가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