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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자가 떠난 참담한 심정을 표현한 노래로는 더 이상의 궁극을 볼 수 없게 만든 곡이 바로 'She’s Gone'이 아닐까? 그 'She’s Gone'의 주인공 'Steel Heart'가 돌아온단다.


한 때 그들이 영혼까지 울리는 그 목소리에 불탄은 정말로 미쳤었다. 영혼의 소리였다. 악마의 흐느낌보다 더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그리고...

She’s Gone은 그야말로 80년대 밤문화를 선도했던 음악이었다. 잔잔히 깔리다가 고음으로 올라갈 때의 그 잔인할 정도로 느껴지는 소름끼침. 그 흡입력에 거의 쓰러지다시피 했다.


밤문화? 그렇다. 밤문화의 꽃이었다.


지금은 나이트이나 클럽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 당시에는 닭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었다. 그리고 닭장에서의 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블루스였다. 무작정 껴안고 뱅뱅 도는 블루스가 아니라 음악의 리듬에 맞춰 스텝을 밟고 손가락 약속에 의해 일정한 궤도를 그리는 사교의 매개체였다.

손가락 약속? 그녀의 허리를 감은 내 왼손과 내 오른손이 잡은 그녀의 왼손이 자연스럽게 만드는 약속이었다.

그녀의 허리를 두른 내 왼손이 그녀의 등쪽을 “톡”하고 한번 치면서 오른 손을 살짝 밀치면 내가 앞으로 나갈 것이니 당신은 뒤로 물러나는 스텝을 밟으라는 뜻이었다. 물론 오른손에 잡혀 있는 그녀의 왼손을 내 쪽으로 이끌면 나는 백스텝을 밟을 것이니 당신은 전진 스텝을 밟으라는 뜻이었고. 또한 “톡톡” 하고 두 번을 치면서 허리를 감은 손에 힘을 주어 안으면 왼쪽 방향으로 원을 그리듯 뺑뺑이를 돌 것이니 알아서 스텝을 밟아달라는 뜻이었다.


물론 미리 말을 맞춰서 그렇게 블루스를 추지는 않았다. 선수들마다 자기가 선호하는 액션과 버릇이 있었으니까. 그냥 한두 번 임의대로 진행하면 눈치가 있는 그녀들은 알아서 잘 따라와 줬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닭장에는 땀으로 범벅이 될 때까지 힘을 낭비하는 놈들도 많았다는 것. '젊음의 행진'의 짝꿍이 췄던 허슬(소방차의 정원관이 짝꿍 1기였다고 기억하고 있다)이나 최신 유행하는 춤이라며 두 놈이 마주보며 쌍으로 쌩쑈를 하는 토끼춤도 많이 추었다.

허나 정작 선수들은 땀 빠지는 그 시간에는 자리를 지켰다. 조용히 술잔을 들어 입술을 축이면서 그녀들을 뿅가게 만들 수 있는 멘트를 구상하면서. 지금도 그러하듯 그 당시에도 썰(說)을 잘 푸는 이른바 유머감각이 먹어주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렇게 초짜들이 광란의 춤으로 분위기를 업(UP) 시키고 나면 이른바 선수들은 매일처럼 1,500원 짜리 음료를 끊고 들어온 죽순이를 선별하는 작업을 했다. 행여나 죽순이들과 엮이면 금방 소문이 나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물 좋고 신선한 사냥감(?)에게는 말도 못 붙이게 될 확률이 높아지니까.


디스코가 끝나자마자 이어지는 블루스 타임... 선수들이 활동할 시간이 되었다.

바로 그 때 블루스 음악으로 선곡된 것이 She’s Gone이라도 되는 날이면 선수들의 눈에는 불이 켜졌다. 그리고 곧장 점찍어둔 그녀의 손을 잡고 슬며시 플로어로 이끌었다. 선수들은 분위기를 잡아야 했다. She’s Gone의 도입부분에서는 쓰리스텝의 여유로움으로 그녀들을 편안하게 해줬다. 일종의 경계심을 없애는 작업이었다. 노래가 30초 쯤 지나게 되면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약간의 뜸들임과 함께 전율스럽도록 짜릿한 고음이 시작되고 급격하게 변화된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여유롭고 느슨했던 쓰리스텝이 상대의 호흡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밀착된 가운데 투스텝으로 바뀌어 가는 순간.

그 리얼리즘에 입각한 밀착과 함께 속삭이는 귓속말은...... 뭔가 그녀들로 하여금 간지러운 기대와 충동을 유도하는 선물이었고 또한 그녀들의 경계를 풀게 만드는 마법이었다.

“몇 분이 오셨어요?”
“네? 세 명인데요?”
“잘 됐네요. 그렇잖아도 우리는 똥개가 한 마리 낀 네 명이 왔는데."
"어? 그럼 짝이 안맞잖아요?"
"괜찮아요. 어리버리한 똥개 한 마리는 곧바로 골로 보낼테니 함께 합석이나 하죠?”





대답이 늦어질 즈음에 블루스 한 곡을 더 받게 된다면 대단한 행운으로 알았다. 특히나 주말에는 짝짓기에 눈이 벌게진 촌닭들이 득시글하기 때문에 DJ들도 그들을 오랜 시간 동안 자리에 앉혀둘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콜이 들어와서 블루스 음악을 한 곡 더 받을 수 있다면......?
그런 경우에 선수들이 실패할 확률은 거의 제로 퍼센트에 가까웠다. 한 바퀴 더 돌리면 머리도 돌고, 이성도 돌고, 감성도 돌고. 모든 게 돌게 되는 것이었다.




- 디제이가 담배를 피러 가기 위해서
- 아니면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
- 그것도 아니면 죽순이가 따라주는 맥주 한잔을 마시기 위해서
- 마지막의 경우는 촌닭들의 숫자에 비해 술이 너무 안 나가니 술을 팔기 위해서......

아마도 블루스 음악을 한 곡 더 선정한 이유는 위에 나열한 것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 곡으로 이어지는 곡이 Manhattans의 Kiss And Say Goodbye라면......?
이 날은 역사가 이뤄지는 날이었다. 일명 "쪽하고 발러" (키스하면서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었다.) 라는 유행어를 남긴 전설적인 노래였기에.

순둥이 촌닭들에게도 Kiss And Say Goodbye가 흘러나오는 순간에는 어지간한 폭탄만 아니라면 그녀의 보드라운 손길을 잡으며 플로어를 몇 바퀴 돌 수 있었다. 그만큼 음악에 따라 그녀들의 마음도 쉽게 열리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굵은 저음으로 깔리는 노랫소리에 맞춰 그녀의 눈을 들여다 보면서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를 통해 열심히 외웠던 번역가사를 읊어 주기라도 하면 술 한 잔 마신 그녀들의 눈은 쉽게 풀리면서 선수의 품속으로 꼬옥 안겨 들었다.

80년대 닭장의 밤은 그렇게 역사를 만들어 갔다.


이궁... 엉뚱한 곳으로 이야기가 흘러 버렸네.
이건 Steel Heart가 온다는 소식을 전하려다 80년대의 낡은 추억만 끄집어 낸 꼴이다.

내가 결혼을 하였던 1998년에 내한공연을 하였으니 벌써 11년이란 세월이 흐르고서야 비로소 국내 팬들과 다시 만나는 셈이다. 어찌되었건 이번에 서울에 온단다. 그리고 이달 26일과 27일 양일에 걸쳐 공연을 한단다.

아... 먹고 사는 게 지옥만 아니라면 그 억만금을 줘도 다시 찾을 수 없는 추억을 찾아 공연장을 찾을 터인데...... 이번에는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 그 전율이 흐르는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듣고 싶은데......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