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인혁당 사과, 말로만 하는 사과는 또 다른 폭력입니다
불탄의 촛불누리/가짜보수 수꼴 : 2012. 9. 14.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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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YTN 캡쳐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의도와는 상관 없이, 또는 대수롭지 않다는 생각으로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라는 후회를 할 만큼의 잘못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무신경하게 넘어갈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 자책이 되어 평생 따라다닐 수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깨끗이 사과를 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어느 정도 홀가분한 마음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상대편에서 사과를 받아들여 관계가 호전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잘못된 사과나 형식적인 사과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지켜보는 눈이 많거나, 잘못을 구하는 연출된 모습이 필요할 때입니다. 어쩌면 크게 이기기 위해 작은 굴욕을 감내하는 나름대로의 셈법에 따르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 같은 사과는 하는 쪽도 그러하겠지만, 받는 쪽 역시 유쾌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심한 불쾌감만 남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사과는 하는 사람의 입장보다는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고. 이제 됐냐?"라는 식의 사과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전혀 납득하지 못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을 통해 사과를 한다는 것은 제2, 제3의 폭력일 뿐이니까요.
인혁당 사건과 관련, 박근혜 후보의 무개념 발언이 정치권에 큰 파장을 낳고 있습니다. 어쩌면 100일이 채 남지 않은 작금의 대선판도에서는 새누리당 정준길 前공보위원의 '안철수 불출마 협박' 논란과 함께 가장 큰 이슈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사과'의 의미를 박 후보나 새누리당 지도부가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었더라면 이렇게나 큰 폭발력을 보이지는 않았을 터이니, 가히 측은지심마저 들게 하더랍니다.
논란의 발단은 박 후보의 입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인혁당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두고 박 후보가 '두 개의 판결'이라고 하는 무개념, '역사의 판단'이라고 하는 몰염치의 발언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이후 새누리당 대변인실에서는 홍일표 대변인과 이상일 대변인이 각각의 이름으로 브리핑을 하게 되었는데, 세상에 이런 코메디가 어디 있을까 싶더랍니다.
"인혁당 관련해 박 후보의 표현에 일부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과를 드린다"는 홍일표 대변인의 브리핑이 있을 때만 하더라도 그나마 수습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 같더니만, 느닷없이 튀어나온 이상일 대변인의 브리핑 때문에 분위기가 자못 묘해지더랍니다. "피해를 입으신 분들의 아픔을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지요?
집권 여당의 대선후보이자 박정희를 아버지로 둔 박 후보의 선택이 '사과'가 아닌 '위로'였다는 것은 그 만큼 사과하기가 싫었다는 반증일 테지요. 그래서 "사과를 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미지 - 노컷뉴스
어쨌든 박 후보가 홍 대변인의 브리핑에 딴지를 걸지 않고 그대로 진행했으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는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이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위로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끝내려 했고요. 그러니 당연히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 없는 위로를 한다는데 어느 피해자가 그따위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거센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가볍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물쩍 넘어갈 수 있으리라 믿었을 것입니다. 허나, 인혁당 유족들의 비난과 야당의 공세를 버텨내기란 너무나도 힘든 상황으로 몰리게되었습니다. 조금만 생각을 했더라면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었을 텐데, 너무나도 안이한 대처와 쓸 데 없는 자존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였을 겁니다. 결국 굳건해 보였던 박 후보의 버티기 모드는 풀려버렸고,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사과로 받아들여 달라는 부탁을 하고 나섰습니다. 비록 사과하는 모양새를 취하기는 했습니다만, 사실 그 내용적인 면에 있어서는 여전히 궁핍해 보인다는 것은 "지난 시절 피해를 입으신 분들께 딸로서 죄송스럽다고 여러 번 말씀드렸다. 그게 사과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진정한 화해의 길로 갈 수 없다"는 정도로 그쳤기 때문입니다.
박 후보 본인은 사과를 했다고 우기고 있습니다만, 정작 피해자 유족들도 그리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보다 상식적으로 사과라고 하는 것은 명확한 언어로 "미안합니다. 사과합니다"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며 고개를 숙이는 데 있는 것 아닐까요? 그 뒤를 "그러나" 또는 "다만"으로 이어지는 박근혜식 조건부 화법은 생략한 채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