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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문화저널21



'동원령'의 사전적 의미는 "전쟁 따위의 비상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병력이나 군수 물자 따위를 동원하기 위하여 내리는 명령"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동원령이 발동되었다는 것은 어떤 국가적 행사가 있을 때 국민의 자발적 참여가 저조하거나 보다 많은 참여를 끌어내고 싶을 때 물리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이라 할 것입니다.

이 같은 동원령이 1970~80년대에는 아주 빈번하게 발동되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학생들이나 시민들은 길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학교수업이나 근무시간의 연장으로 기록되거나 강제되었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길거리로 나서지 않는 것은 그 만큼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셈이지요.

불탄이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1980년대만 하더라도 김포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던 인공폭포나 하이웨이주유소 근처에서 열심히 태극기를 흔들던 학생들의 모습은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던 이웅평씨 환영 행사에 동원되었을 때는 불탄의 기억에도 지금까지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귀순시 이웅평씨가 몰고 온 천문학적인 값어치를 가진 전투기(미그기) 역시 당시에는 무척이나 화제가 되었던 것 같고요.


이미지 - 경향신문 1983.4.14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동원령은 아직도 우리나라 곳곳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비교적 약자의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에게는 학점이나 봉사활동확인서를 미끼로 하는 모양이고요.

작년 10월에 구미시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국토해양부 산하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 주관하는 4대강 사업 낙동강 구미보 개방 축하행사"라고 하는 징글징글하게 긴 이름의 행사가 있었는데, 구미시에서는 관할 지역에 있는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동원하기 위해 무리한 전시행정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행사에 참석할 사람이 없다는 건 보나마나한 일이요 불 보듯 뻔한 것이니 학생들로나마 머릿수를 채우겠다는 심보였던 게지요.

결과적으로 대형 버스를 대절해 학생들을 행사장으로 실어 나르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에 따른 반발도 거셌다는 것은 그 뒤에 밝혀졌습니다. 무슨 말이고 하니, 처음 교육청에서는 정규수업일을 이유로 거부를 했는데, 구미시에서는 이러한 교육청을 일선 면사무소와 주민센터를 전면에 내세우며 학교를 압박했던 것이죠.

결국, 10여 개의 초·중·고 학생 1,000여 명이 이 행사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는데, 더 화가 나는 것은 이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이 체험부스에서 발급하는 스티커를 받아 오면 4시간의 봉사활동확인서를 구미시가 내줬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봉사활동 프로젝트였던 셈입니다. [ 관련 포스트 : 4대강사업 홍보행사에 학생 동원하는 구미시, 참여 학생은 봉사활동 4시간 인정 ]

그렇다면 박근혜 후보의 경우에는 어떨까요? 모르면 몰랐지 유신 독재시대나 군부 독재시대보다 딱히 나아 보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미지 - 오마이뉴스


당장 오늘 있었던 '가천대 열린 특강'만 놓고 보더라도 박근혜 후보의 특강을 들으러 온 학생들의 손에는 저마다 핑크색의 '출결확인서(강의 출석 확인 카드)'가 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예정 시간보다 1시간이나 앞서 모든 자리와 계단까지 학생들이 참석한 것처럼 보였지만, 한켠에서는 학생 명부를 들고 참석 학생들의 출결을 서로 체크하는 듯한 모습도 연출되었으니 이래저래 말들이 많을 수밖에요.

특히, 가천대학교의 인천 메디컬캠퍼스 간호학과 학생들의 경우에는 '버스 대절과 강제 동원'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어 향후 이에 대한 논란이 더욱 거세질 것 같습니다. 학교 측에서야 수업 대신 특강을 듣고 확인서를 제출하는 것을 출석으로 처리하는 것은 교수의 재량이라며 뻗대고 있기는 합니다만. 박근혜 후보에게서 딱히 듣고 싶은 얘기도 없는데도 비싼 등록금까지 내고 강제적으로 특강을 듣게 하는 건 심각한 문제가 아니냐는 참석 여학생의 말을 가천대학교나 박근혜 후보는 어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사실 박근혜 후보의 동원령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뭐, 예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꼬치꼬치 따진다면 분명히 과거타령이나 해대는 한심한 떨거지로 비칠 터이니 비교적 근래에 있었던 사례 몇 가지만 제시해 보겠습니다.


이미지 - 오마이뉴스


먼저, 지난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의 일입니다. 원조 비박3인방 중 김문수 경기지사를 제외한 정몽준 의원과 이재오 의원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난 뒤, 새로이 참여한 후발 비박주자들은 여러 번에 걸쳐 박근혜 후보가 자행했던 동원경선을 문제 삼았던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관한 뉴스를 오마이뉴스가 심층 보도를 했던 적도 있었고요. [ 관련 뉴스 : "차비 안 냈고 저녁밥도 준다고 했다" ]

지역 지지자들에 의한 자발적 참여였다고는 하지만, 자금의 지원 없이 진행되기에는 너무나도 조직적이었다는 의혹은 쉬이 잠재울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 같은 모습은 대선출마선언식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던 것이고요.

또한, 얼마 전에 있었던 환경미화원들과의 만남을 두고서도 대부분의 언론들은 박근혜 후보의 '소통행보'를 찬양하는 기사를 양산했습니다. 하지만 한 스포츠신문이 보도했던 기사에는 박근혜 후보와 환경미화원들과의 만남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고 있었습니다.

이 뉴스에 따르면 박근혜 후보의 캠프 측에서 예상했던 만남의 시간은 애당초 50분이었지만, 불과 30분여 만에 박근혜 후보는 자리를 떴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박근혜 후보를 맞은 이들은 환경미화원들이 아니라 대부분 50대의 여성들이었다는 것이죠. 정작 환경미화원인 사람은 박근혜 후보가 나타나기 30분여 분 전에 겨우 한두 명 정도만 오고갔을 뿐이었다나요?


이미지 - 스포츠서울


이 같은 상황이 연출된 것은 오로지 안전을 문제로 사전에 철저히 통제했기 때문이랍니다. 모임을 마친 자리에서도 배웅하는 이는 없었으며, 박근혜 후보가 건물 밖으로 나올 때에는 단 한 명의 환경미화원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박근혜 후보는 5분 정도의 시간을 들여 자신을 기다리던 여성들과 사진만 찍었다고 하더랍니다.

"20명의 환경미화원들이 참석하셨는데 4~5분만 얘기했다. 이 분들 또한 비슷한 얘기를 하셔서 일찍 끝난 것 같다"는 국민행복캠프의 조윤선 대변인의 말은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 관련 기사 : SS현장 - 박근혜, 환경미화원과 만남 30분 만에 끝난 사연은? ]

늘 이렇습니다. 허나, 언론을 장악한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에게는 결코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남아 있는 대선경쟁에서는 이 같은 유신스럽고 독재스러운 '구태 동원령'을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소망이 모이고 희망이 쌓이면 결코 헛된 꿈만은 아니겠지요?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