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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후보가 사과했습니다. 딸이 아닌 대통령 후보로서, 그리고 입을 여는 바로 그 순간 아버지 박정희는 독재자 박정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생 숙원이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명예회복과 복권이었을 박근혜 후보로서는 어떡해서든 이 자리 만큼은 피하고 싶었을 텐데 말입니다.

허나, 그것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 또 그래야만 맞닥뜨리고 있는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라면, 두 눈을 질끈 감고서라도 해낼 수 밖에요. 여지껏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공과를 두고서는 결코 단 한 번이라도 입밖에 내어본 적 없는 "사과(먹는 사과 아니죠)"란 말을 써야 할지라도, 심지어 '인혁당 사건'을 '민혁당 사건'으로 둔갑시키는 한이 있을지라도.




'소나기는 피해 간다'는 말처럼, 어쩌면 지금의 고통이 잠시 뿐이라는 생각을 박근혜 후보는 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투명 프롬프터의 기자회견문을 읽어 내려갈 때에는 집권 이후에 도모할 아버지 박정희의 명예회복과 복권에 꽤나 많은 신경이 쓰였을 테지요.

그러니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의 박근혜 후보는 힘들었을 겝니다. 지금까지 뉴스와 방송을 통해 얼마나 박근혜 후보가 아버지 박정희의 틀 속에 갇혀 지내왔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박근혜 후보의 삶 자체가 스스로 모범답안이라 여기는 아버지 박정희의 것만을 따랐던 미망의 허깨비였는지도.

끝내 투명 프롬프터의 마지막 글까지 모두 낭독한 박근혜 후보는 기자의 질문을 일절 받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아버지 박정희를 부정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혹여라도 예상할 수 없는 범위의 질문이라도 받게 된다면, 그리하여 논란이 될 수 있는 답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최악의 상태가 될 터이니 무조건 막아야 할 것입니다.

때문에 박근혜 후보의 기자회견에서 사과의 진정성을 느끼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나 민혁이가 아닌 '인혁당 사건'의 유족들처럼 지옥의 세월을 견뎌 온 피해자들에게는 두말할 나위 없을 테고요.

반면에 지금껏 박근혜 후보를 가까이에서 지켜 온 인물들에게는 분명히 '강도 높은 사과'이자, '파격적인 행보'로 비쳤을 것입니다. 그러니 새누리당, 특히 친박계 인물들이나 국민행복캠프 참여자들은 한껏 고무된 표정을 감추지 않았으며, 각 언론사의 박근혜 후보 담당 취재원들 역시 기대 이상의 기자회견이었다는 반응을 긍정적인 기사로 반영했던 거겠죠.

보수 언론들은 벌써부터 박근혜 후보에 대한 역사관 논쟁이 종결되었음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그 짧은 기자회견 하나로써 5.16쿠데타, 유신독재, 인혁당 사건 등 지금껏 박근혜 후보의 발목을 잡아왔던 모든 역사관 논란을 끝내자는 뜻입니다. '정면 돌파', '통 큰 사과' 등의 수식어가 덧칠된 박비어천가가 인터넷에도 넘쳐날 지경이고요. 헌데, 그와 같은 얼빵한 논지를 국민들이 정말로 따라줄 거라 믿는 걸까요?

기자회견 후 박근혜 후보가 향한 곳은 부산입니다.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는 물론이요, 무소속의 안철수 후보 역시 부산이 연고지라 할 수 있으려니와, 최근 들어 부산·경남(PK)에서 요동치고 있는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것 또한 서둘러 방문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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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박근혜 후보는 부산에서 택시기사들을 만났습니다. 부산시당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서는 말춤까지 춰가며 이미지 정치를 강화해 나가기도 했습니다. 허나, 시민단체와 부산일보 노조원들, 그리고 수많은 지식인들이 박근혜 후보의 앞길을 막아섰습니다. 부산대학교에 예정되었던 박근혜 후보 특강은 학생회가 거부, 결국에는 취소가 되는 사태를 빚기도 했고요.

박근혜 후보로서는 너무나 답답할 것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나름대로 자신만의 '원칙과 소신'(아직까지 불탄은 이게 뭔지 잘 모르겠더랍니다.)을 갖고 '국민대통합'의 길로 나아가려 하는데, 뜻대로 되기는 커녕 안팎으로 걸림돌만 넘쳐나니 환장할 일이지요. 더군다나 이날은 딸이 아닌 대통령 후보로서 '쿠테타가 생략된 5.16'과 '독재가 빠진 유신', 그리고 '인혁당 사건'이 아닌 '민혁당 사건'의 희생자에게 애써 사과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공주로, 퍼스트 레이디로, 육영재단·정수장학회·영남대재단·부산일보의 지배자로 살아 온 탓에 유력한 대통령 후보까지 될 수 있었던 박근혜 후보입니다. 정치인 박근혜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먼저 사람다운 충언과 직언을 해 줄 인물이라 하겠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박근혜 후보 주변에는 그런 인물들이 포진해 있지 않아 보입니다.


29만원짜리 대통령 전두환의 라운딩 일행이 함께 마셨다며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 경향신문


박근혜 후보 주변을 맴도는 인물들이라곤 고작해야 박정희 찬양가를 높여 줄서기에 이용하거나, 권력의 단맛을 조금이라도 보았던 박정희 시대의 노회한 자들도 넘쳐나는 형국입니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며 미래를 말하고 있는 박근혜 후보라면, '대통령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이들에 대한 신변 정리가 꼭 필요한 대목이 아닐까요?

물론 추석민심까지는 기다려봐야 알 수 있을 테지만, 지금까지의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아무래도 박근혜 후보에게는 너무나도 힘든 대선경쟁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갑자기 대통령을 꿈꾸는 박근혜 후보에게 개그콘서트의 '정여사'가 이리 말하는 것 같습니다. "힘.들.어. 힘들어도 너~~무~~ 힘들어"라고......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