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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팀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잖아도 이 건으로 부서회의를 했습니다만 아직 뭐라고......”

“아! 알았네. 아무튼 내일 정식 미팅 전까지는 어떤 형태로든 보고서가 올라와야 할거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옆머리를 길게 길러 앞머리를 커버한 전형적인 대머리에 안경잡이 박상무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으름장을 놓더니 엘리베이터가 있는 방향으로 사라져갔다.

퇴근 무렵, 상품개발부 김부장이 혀를 빼들고 게거품을 뿜으며 영업본부장인 박상무한테 부리나케 달려가더니 기어이 보고를 드렸나 보다. 가뜩이나 요즘 사내 분위기도 좋지 않아 되도록 눈 밖에 나지 않으려 기를 쓰고 있었는데 원수 같은 상품개발부장이 평소에 마찰이 많았던 마케팅팀장인 내게 칼을 꺼내 든 것이겠지. 그러게 초콜릿폰처럼 때깔 좋은 제품을 개발했으면 우리 마케팅팀도 얼마간은 날로 먹고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을 왜 먹히지도 않는 폴더로의 복고를 주장해서 영업과 우리를 이렇게 두들겨 맞게 하냐는 말이다. 그러니 전 분기 대비 40% 가까운 마이너스 매출에 대한 불똥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나로서는 정말 김부장을 갈아서 마시고 싶은, 아니지 먹긴 뭘 먹어? 더러워서라도 개에게나 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이게 무슨 캠페인이란 말인가? 김부장이 박상무한테 보고한 내용은 경쟁업체인 LG에서 온라인으로 펼치는 하나의 캠페인 광고였다. 우리 마케팅팀에서는 해결책을 찾느라 1시간이 넘도록 회의를 진행하였지만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던 사안이었던 것이다. LG핸드폰에서 느닷없이 집행한 광고라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천만대가 넘게 팔린 휴대폰 중에서 다섯 개의 시리얼 넘버를 가지고 있는 휴대폰을 찾고 있다는 것이니 황당할 수밖에 없는 노릇 아닌가? 그것도 한 대당 1,000만원의 현상금을 걸고 말이다. 그 다섯 대의 휴대폰에 무슨 비밀이 있기에 이토록 전면적으로 광고까지 하면서 난리를 치고 있느냐는 말이다.

1시간 전 회의장에서 설전을 펼쳤던 장면이 떠오른다.




MIT공대에서 영입한 김박사의 말에 의하면 단순히 연구원의 실수를 커버하기 위한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LG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그런 거금을 들여 광고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신기술이 유출되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건 현실적으로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신기술을 접목시킨 휴대폰이라면 보안이 철저하게 이뤄졌을 것이고, 또 김박사가 말한 것처럼 LG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유출된 신기술에 대해 그와 같은 광고를 공개적으로 하면서까지 ‘우리 회사가 이번에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을 했고, 그 기술을 시범적으로 다섯 대의 휴대폰에 장착시켰는데 연구원의 실수로 일반인에게 팔린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기에 이렇게 현상광고를 하니까 초콜릿폰을 구매한 고객들께서는 시리얼 넘버를 확인하여 우리가 찾는 휴대폰이 맞는 경우에는 사례금으로 1,000만원과 새로운 휴대폰으로 다시 개통시켜 줄 것이니 어서 돌려주시오.’라고 까발릴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 모피어스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는 MIT에 있던 김박사와 1년 6개월 동안 함께 산학합동연구에 참여했던 에릭슨 개발자 출신이라 그랬을까? 모피어스 역시 신기술유출에 비중을 두고 있었고,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심증을 아주 굳힌 것처럼 보였지 않은가? 그는 LG에서 새로운 기술을 접목시킨 휴대폰 견본을 어떤 경로를 통해 시장으로 흘렸을 것이란 말과 함께 모토로라나 에릭슨에서도 그런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고까지 말했던 것이다. 그가 그렇게 확신을 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만약 이번 건이 프로모션의 하나라고 한다면 이렇듯 온라인에서 부분적으로 움직이지만은 않았을 것이란다.

과연 그럴까? 뭔가 연결고리가 약해서 금방이라도 바스락 소리를 내며 사라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가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대체 뭐란 말인가?

좀 전에 뉴욕법인에 협조를 요청하여 얻어낸 이메일 답신에는 너무나 어이없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혹시 시에나 밀러의 개인사진이 들어있지 않을까 하는 뉴욕시민의 말을 액면 그대로 전해온 것이다. 물론 최근에 LG가 초콜릿폰을 프로모션하면서 시에나 밀러와 작업을 했던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세계적인 배우라 하더라도 LG 정도 되는 기업이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사명(社名)을 앞세우면서까지 그런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건 아닐 것 같다는 회신을 보내고 나서 잠시 담배를 한 가치 피고 들어왔더니 메일 하나가 또 들어와 있다. 뉴욕에서 A/S를 담당하는 김기사의 말에 의하면 대통령과 같은 거물급 인사의 개인정보나 비밀정보가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란다. 스위스계좌로 통칭되는 비밀계좌일 가능성까지 들먹이면서 마피아와의 연계설까지 들먹이는 것을 보면 아예 소설을 쓰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첫 번째 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 메일을 보는 순간 뉴욕이란 도시의 이미지가 가십거리에 철저히 지배당하고 있는 속물로 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거기에 비하면 각각 다른 다섯 개의 시리얼 넘버에 해당하는 초콜릿폰이 한정판으로 생산된 골드제품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정과장의 말이 훨씬 더 신뢰감을 가지게 했다. 그렇지만 일단 판매가 되어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이 아무리 한정판으로 생산된 골드제품이라고 하더라도 다시 회수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내내 머리에 맴도는 것은 씁쓸한 생각 뿐이었고, 그것은 쉽게 떨쳐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결론을 내리기는커녕 어디에서부터 실마리를 풀어가야 할지 감도 못잡고 답답해하고 있을 때 진동으로 맞춰 놓은 휴대폰이 요란하게 떨려왔다. 혹시 스팸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문자를 열어보는 순간 심장이 떨려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같은 휴대폰업계에 있는 사람이리라.

-뉴초콜릿폰이 출시 전이라 아마도 2천만번 째 팔린 초콜릿폰을 찾아서 홍보용으로 이용하려는 것 같은데요. 그쪽은 어떻게 결론을 내렸나요?

한번쯤은 봤음직한 발신자 번호에 품절남이라는 익명을 사용하는 것을 보니 대충 짐작은 가는 곳이다.

‘그래! 우리만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휴대폰 관련 업체는 모두 이번 캠페인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거다. 잠시 더 기다려 보기로 하자. 또 다른 정보가 넘어올지 모르잖아.’

예상한대로 또 휴대폰은 울리기 시작했고 여지없이 빼곡이 적힌 문자가 액정을 통해 눈으로 들어온다.

- 신제품 출시에 맞춰 가장 먼저 출시된 제품이 어느 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귀사의 생각은 어떤가요?

품절남과 마찬가지로 이번의 문자 역시 찾아라월리남이라는 익명을 사용하고 있다.

옳지! 그렇다. 모두가 신제품 출시와 연관을 짓고 있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그것이 뭐가 되었든 우리가 우려할 만큼 큰 이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신제품은 출시될 것이고 어떻게든 홍보는 시작할 것이며, 이제 곧 대대적인 광고가 매체를 타고 소비자에게 전달되겠지.

결론을 내리고 나니 보고서에 쓸 내용도 간단명료해진다. 30분에 걸쳐 보고서를 작성하고는 품절남과 찾아라월리남에게 느긋한 마음으로 문자를 보낸다.

- LG핸드폰이 이번에 전개하고 있는 캠페인은 신제품 출시에 앞서 세계적으로 이슈를 만들려고 하는 바이럴 마케팅입니다. 이번 캠페인을 통해 전 세계 소비자의 이목을 끌어 입소문을 창출, 커다란 이슈를 만들려는 계획입니다.


그래. 이번 LG의 초콜릿폰 시리얼 넘버 캠페인은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벌이는 바이럴 마케팅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거다.


Posted by 불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