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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구석진 자리마다 널브러져 있는 추억의 조각들을 맞게 된다. 그 조각들 하나마다 사연이 숨어있고, 한숨이 묻어있으며, 때로는 탄식이 서려있다.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제 철도 아니건만 새로 개비한 검정운동화 한 켤레를 양손에 나눠진 까까머리 코흘리개가 신이 나서 발가락이 삐져나온 낡은 고무신을 신은 채 휘적거리고 있다. “뻥이요!” 튀밥을 튀기는 뻥장수의 목소리도 신명나게 들려온다. 엿장수의 가위장단에 유행가 한 소절이 튀어나오고 떨이를 외치는 남정네의 목소리에 숨어있던 새각시는 얼른 사발에 넘치도록 막걸리를 따른다. 모두가 기억이고 모두가 추억이다.

그 애환과 추억의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꽤나 번잡스럽지 않을까 싶었던 박람회가 2009년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청주체육관에서 열렸다. 충북도와 중소기업청, 전국상인연합회가 주최하고 충북상인연합회가 주관하는 '2009 우수시장 박람회'였다. 이 자리에는 충북도내 전통시장(재래시장)의 우수 상품들도 전시되었고, 흥겨운 특별무대도 마련되었다.



3일 동안 이어진 박람회를 관람하기 위해 아이들과 청주체육관으로 향한 것은 박람회 마지막 날인 9월 20일 저녁 무렵이었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소리로 짐작하건데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행사는 '편리한 시장, 잘사는 이웃, 행복한 충북'을 주제 삼아 대형할인점과 기업형 슈퍼마켓, 그리고 홈쇼핑 등에 밀려 갈수록 침체되는 우리의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취지를 가지고 있었다. 안내에 의하면 80개의 부스가 행사장에 마련되어 있다고 했는데 도착해서보니 혹시라도 날을 바꾸어가면서 하루씩 참여했다면 모를까 그 수효는 의외로 적어 보였다.



부대행사로 소개된 대장간 및 한과, 짚·가죽공예품 만들기 체험은 마지막 날 늦은 참관 탓이었는지 보이지 않았고, 나온다던 남진과 박현빈을 대신하여 3명의 무명가수가 자리를 빛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마이크를 잡은 가수 3명이 이끌어가는 분위기는 운집해 있던 관람객들과 시장 관계자들을 충분히 만족시켰다.

주차장의 무대를 뒤로하고 청주체육관 정문 쪽에 나 있는 먹거리 장터 쪽으로 이동해 보니 가을의 상징인 은어를 굽는 냄새가 뱃속의 식충이들을 사납게 깨워 버렸다.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해장국과 통돼지 바베큐는 술꾼들을 유혹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전통음식들도 몇 가지 보였으나 유독 우리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은 다름 아닌 엿장수였다. 뚱뚱한 사내가 익살스런 분장과 울긋불긋한 각설이 복장을 하고는 꽹과리의 편편한 면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 맛깔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보니 하늘 쪽을 바라보고 있는 꽹과리의 패인 면에는 팩으로 포장한 호박엿이 담겨져 호객을 돕고 있었다.



자리를 잡아 막걸리며 소주를 들이키는 많은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추억과 회한이 함께 물들어 있었고, 이미 충분히 잔을 기울이신 몇몇 어르신들은 타령조를 읊으며 춤사위를 닮은 몸짓으로 흥을 돋우고 있었다. 다시 공연무대 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무대 근처에다 판을 벌였던 상인들의 부산한 움직임이 임박해오는 파장을 알리고 있었다. [by 불탄 090922]

Posted by 불탄